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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산골 농부의 세상사는 이야기]군대 간 아들 녀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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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농부의 세상사는 이야기]군대 간 아들 녀석에게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1/08/23 10:20 수정 2011.09.06 10:33



 
↑↑ 서정홍
농부시인
본지 객원칼럼니스트
ⓒ 양산시민신문 
사랑하는 아들아, 기상이변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많은 이들이 집과 가족을 잃고 절망과 슬픔에 잠겨 있단다.

지구가 왜 이렇게 됐을까? 이 모두 아름다운 자연을 함부로 짓밟은 사람들 탓이겠지. 오직 남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편리하게 살고 싶은 어리석은 사람들 욕심 때문에,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자연이 파괴되고, 자연은 또 얼마나 사람들을 괴롭힐지….

이렇게 무서운 재앙이 ‘사람들’의 욕심에서 시작된 거라니 할 말이 없구나. 그 ‘사람들’ 속에 이 애비도 들어간다 생각하니 더욱 할 말이 없구나.

어느 학자가 ‘사람만이 문제’라고 하지만, 이 애비는 그래도 ‘사람만이 희망’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저질러 놓은 잘못된 세상을 누가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겠느냐. 오직 사람의 힘으로 다시 돌려놓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이 애비는 아무리 죄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람을 미워할 수가 없단다.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살아서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지.

늘 마음속에 있는 아들아, 며칠 전, 네가 첫 휴가 나왔을 때 편안하게 잠든 네 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비록 4박5일 짧은 휴가였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더구나. 밤마다 잠이 오지 않아서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며, 먹긴 잘 먹는데 똥이 잘 안 나온다는 이야기며, 더구나 등에 20kg짜리 ‘완전무장’을 하고 한 시간 내내 뛰면서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이 애비 마음을 아프게 하는구나.

사랑하는 아들아,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가 지나고 나니 벌써 아침저녁으로 가을바람이 분다. 아침부터 밤늦도록 소쩍새(북녘에서는 접동새라 한다)가 ‘소쩍, 소쩍’ 울고 농촌 들녘은 조금씩 바빠질 것이다. 아버지는 오늘 하루 내내, 김장 배추 심을 산밭에 거름을 넣고 이랑을 갈았단다. 한 보름 지나면 올밤(빨리 익는 밥)이 익어 입을 쩍쩍 벌릴 테고, 한 달쯤 지나 기다리던 한가위가 오면 온갖 과일들이 제 자랑하느라 제 빛깔로 노래를 부를 테지.

12월쯤 다시 휴가 나온다 했지. 그때는 아버지가 농사지은 햅쌀로 밥을 지어 햇김치 버무려서 한 상 차려줄 테니, 걱정 말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해라. 이 애비는 우리 아들이 최고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단다. 하루하루 행복하게 그리고 후회 없는 삶을 살기를 바랄 뿐이지.

사랑하는 아들아, 모든 근심걱정과 불행은 마음에서 오는 것임을 늘 잊지 마라. 네 마음이 평화로우면 그만큼 세상은 평화로워질 것이고, 네 마음이 평화롭지 못하면 그만큼 세상은 불행해 질 것이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원숭이가 새가 되는 것은 마술이지만,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을 기적”이라 하더구나. 아버지는 오늘도 네게 변화가 있기를 빈다. 기적이 일어나기를 빈다.

늘 열려 있는 사회 속에 있다가 군대라는 닫힌 공간 안에서 얼마나 몸과 마음이 힘들까?

더구나 어느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아온 우리 아들이 ‘무언가’에 묶여 있다고 생각하니 이 애비 마음이 어찌 편하겠느냐. 성서에 이런 구절이 생각나는구나.

“어떠한 처지에서도 늘 기뻐하십시오” 군대생활이 조금 힘들더라도 더 힘들게 견디는 동료들을 위해서 네가 힘이 되어주면 좋겠구나.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누구한테 힘이 되나요?’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동료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다보면 네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 않겠니?

군대도 사람이 사는 곳이란다.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을 인정하고 조금씩 마음을 열면 한결 자유로워지리라 생각한다. 모든 게, 모두 다, 삶의 일부분이라 바람처럼 잠시 잠시 지나는 것이다.

그러니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마라. 벗어나려고 할수록 더욱 끈질기게 따라 붙는 게 외로움이거든.
그러니 차라리 외로움한테 자신을 편안하게 맡기고 외로움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될 테니까. 외로운 사람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지. 아무 걱정 말고 군인으로서 동료들과 선후배들 잘 섬기고 살도록 해라.

언제나 아버지는 네 편이다. 세상 그 어떤 것이 너를 힘들게 하여도 희망은 바로 눈앞에 있다는 것을 가슴에 새기길 바란다. 자주 편지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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