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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호주인 바네사 씨가 향교 찾은 까닭은
한국·호주 커플 전통혼례로 부부의 연 맺었다

노미란 기자 yes_miran@ysnews.co.kr 입력 2011/09/06 09:39 수정 2011.09.23 03:32




ⓒ 양산시민신문

추석을 일주일 앞둔 지난 3일 오후 양산향교(전교 류득원) 앞뜰이 오랜만에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사모관대 차림의 한국인 남성과 연지곤지를 곱게 찍은 호주 여성의 전통혼례가 치러진 것. 외국인 신부가 한국사람마저 낯선 전통혼례를 올린다는 소식에 교동마을 주민들도 구경을 나왔다.

이날 전통혼례를 올린 주인공은 류영철(35) 씨와 호주 출신 바네사 카네바레(35) 씨 부부. 이들은 2009년 초 일본에서 처음 만나 2년여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

일본 동경대학교 대학원에 다니던 바네사 씨가 영어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영어를 배우러 온 류 씨와 만나 사랑을 키웠다. 류 씨는 현재 서울에서 IT 회사에 다니고 있고, 바네사 씨는 교환학생 자격으로 서울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신랑은 기러기를 안고 옵니다”


짝을 맺으면 죽을 때까지 서로의 인연을 끊지 않는다는 기러기를 신부에게 전달하는 새신랑 류 씨의 얼굴에는 설렘과 긴장이 동시에 묻어났다. 이는 새신부 바네사 씨도 마찬가지. 한국말을 잘 모르는 바네사 씨는 대례청으로 나오라는 집사의 안내에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한국인도 낯설어하는 전통혼례를 이들 부부가 올리게 된 이유는 뭘까.

우선 호주 출신인 바네사 씨에게 전통혼례를 통해 한국문화를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바네다 씨는 “한국 결혼식 문화가 서양식(western)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지만 진짜 서양식은 아니다”며 “한국서 결혼하는 만큼 한국 전통을 따르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서 전통혼례를 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 전통혼례인 만큼 호주에서 오는 가족과 친척들이 결혼식을 즐길 수 있다는 바람도 있었다.

류 씨도 한국 결혼식 문화의 아쉬운 점을 꼬집었다. 결혼식 대부분이 시간에 쫓기고 사람들에게 치여서 제대로 집중하지 못해 결혼식의 의미가 사라져간다는 것.

류 씨는 “호주에서 가족이 오는 만큼 결혼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할 수 있도록 전통혼례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표주박을 합치면 혼인이 성사됩니다”


류 씨 부부는 결혼을 결심한 이후 유튜브에서 전통혼례 영상을 찾아보면서 준비했다. 하지만 백견이불여일행(百見 不如一行)이라고 했던가. 본격적인 대례가 시작되자 긴장감이 묻어났다.

신랑 신부가 몸과 마음을 청결히 하는 의미로 손을 깨끗이 씻는 관세우 의식을 마치고 신랑과 신부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는 교배례 순서. 바네사 씨가 앉았다 일어나는 자세가 다소 불안해보였다. 하지만 서천지례(하늘과 땅에 맹세하는 의식), 서배우례(배우자에게 서약하는 의식)를 거치면서 바네사 씨의 자세가 한결 편해보였다. 맞은편에서 신부를 바라보는 류 씨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서양식으로 따지면 주례를 뜻하는 집례는 류득원 전교가 맡았다. 류 전교는 일심동체가 되라는 뜻에서 신랑 신부가 술을 나눠마셨던 표주박을 양손에 들고 하나로 합치는 예필선언(예식이 끝남을 알리는 의식)을 통해 혼인이 성사됐음을 하객에게 알렸다.


“우리 가족이 된 것을 환영합니다”


혼례를 마친 뒤 향교 명륜당에서는 신부가 시댁식구를 뵙는 의식인 현구고례(폐백) 의식이 치러졌다. 바네사 씨는 시아버지 류지태(62, 상북면) 씨와 시어머니 이복순 씨에게 일일이 폐백 음식을 올리며 며느리로서 다시 한 번 효도를 다짐했다.

전통혼례에서 신랑은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처가식구를 뵙는 것이 순서이지만 이번 전통혼례에서는 특별히 신랑도 함께 처가식구에게 인사를 올렸다. 바네사 씨가 대학원 일정 때문에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데다 처가 식구들 역시 호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위의 인사를 받기 위해 장인 카네바레 레모 씨와 장모 린도 카멜라 씨가 명륜당에 올랐다. 하지만 사위의 인사를 받으려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보는 이들의 웃음이 터졌다. 레모 씨가 양반다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데다 린도 씨 역시 바닥에 앉는 자세가 엉성했기 때문. 겨우 집사의 도움으로 겨우 자세를 잡은 레모 씨는 류 씨에게 “우리 가족이 된 걸 환영하며,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덕담을 건넸다.


“오빠 결혼 때문에 독일에서 건너왔죠”


결혼식이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열려 가족ㆍ친지들이 오랜만에 안부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특히 2005년 독일인과 부부의 연을 맺은 류 씨 여동생 류혜진 씨도 가족과 함께 한국에 들어와 오빠 결혼식을 축하했다.

또한 호주 여름휴가 시즌이 9월 초인 덕에 바네사 씨의 가족뿐 아니라 바네사 씨의 이모와 사촌형제도 참석해 전통혼례를 지켜봤다.

바네사 씨 어머니 린도 씨는 “전통한복이 굉장히 인상적이고, 이렇게 전통 방식으로 축하하는 게 좋은 방법인 것 같다”며 전통혼례복을 곱게 차려입은 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 손을 씻는 관세우 의식을 하고 있는 신부 바네사 씨
ⓒ 양산시민신문

↑↑ 집례를 맡은 류득원 향교 전교가 예필 선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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