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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 한줄의 노트]붉은 고구마..
사회

[시 한줄의 노트]붉은 고구마

양산시민신문 기자 396호 입력 2011/09/20 09:34 수정 2011.09.20 09:23




세 해쯤 묵은 밭 빌리고 암소와 쟁기도 빌려
시뻘겋게 갈아엎고 두둑 두툼하니 올려붙인 뒤
듬성듬성 고구마순 꽂은 그 여름내 해 쨍쨍
소나기 삼형제 자주 지나가며 무지개 이따금
호수에 하늘문 세우더니 거기 기러기 내려앉기 전
붉은 두둑 헐어 열댓 발자국마다
울퉁불퉁 고구마 한가마씩, 나는 허리 펴며
푸른 하늘에 흰구름에 대고 크게 외쳤다
고맙습니다


찐 고구마 한입 뚝 베어 물면
삶은 눈두덩이 따뜻해질 만큼 곰곰 달다.







이면우 시인

1951년 대전 출생. 생계를 꾸리는 직업은 보일러공. 최종 학력은 중졸. 주변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 첫 시집 《저 석양》을 펴내면서 문단에 나왔다.
제2회 노작(露雀)문학상 수상(2002년). 시집으로 「저 석양」「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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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 양산시민신문 
이 세상 모든 생명체의 가장 큰 본능은 생명의 지속입니다.

살아있는 한 무엇인가를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식물이야 광합성작용을 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만, 동물은 다른 생명을 먹어야만 자신의 생명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위 시는 내 입으로 찐 고구마가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이 있으며, 얼마나 많은 존재가 도와주어야 하는지를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첫 행 <묵은 밭 빌리고 암소와 쟁기도 빌려>에서 쓰인 서술어 ‘빌리다’는 밭 한 뙈기 없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 맛보는 삶의 단맛을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내는 동시에 삶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의 계기를 제공합니다.
무엇이 내 것일까? 밭? 암소와 쟁기가? 해가? 무지개가?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일 뿐 실제 우리의 삶은 잠시 빌려 살다 가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곧 가을이 오고, 농부들은 땀 흘려 가꾼 곡식들을 거두어들일 테지요. 그 곡식들이 우리들 식탁 위에 오르기까지 힘을 보태어준 농부들과 천체와 기후, 동물과 식물들을 생각하며, 오늘은 삼라만상이 듣게끔 큰소리로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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