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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홍 농부시인 본지 객원칼럼니스트 | ||
ⓒ 양산시민신문 |
한 가지는 언제 죽더라도 아무도 울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는 소리 들리면 마음이 슬퍼 저승길 못 간대요.
또 한 가지는 형제끼리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투는 소리 들리면 가슴이 아파 저승길 못 간대요. “할머니, 진짜 죽어도 우는 소리 다투는 소리 다 들려요?” 하고 물으면 숨이 끊어져도 귀는 살아 있어 다 들린다 합니다.
할머니 마지막 소원은 그냥 조용하게 자면서 죽는 것입니다. 누구나 그렇게 죽고 싶은 게지요. 그러나 누구나 그렇게 죽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삼십 대에 이런저런 일로 아내에게 그리고 아들에게 유언을 써 두었습니다.
“여보, 내가 당신보다 먼저 젊은 나이에 죽게 되더라도 나를 위해 울지 마오. 어린 자식놈들과 힘겹게 살아야 할 당신을 위해 눈물을 아껴두오. 남기고 갈 것이라고는 손때 묻은 장롱과 반쯤 찌그러진 책상 그리고 외롭고 힘겨운 삶 속에서도 나를 늘 기쁨으로 살게 했던 모서리 닳은 시집 몇 권뿐이오. 아무것도 없소. 뒷날 자식놈들 자라서 못난 이 아비의 삶을 묻거들랑, 내가 뿌린 말의 부피만큼 내가 남긴 글의 무게만큼 정직하게 살기 위해 애썼다고 말해 주오. 내가 나를 사랑하듯 당신이 나를 사랑하듯 진정 당신을 사랑하오”
“아들아, 여태껏 내 삶에 지쳐 아픈 이웃들 돌볼 새 없이 살았으니 남기고 떠날 이름 석 자조차 부끄럽구나. 내 마지막 그 날에 병들고 시든 몸뚱어리 무어 쓸모가 있으랴마는 간이든 콩팥이든 눈이든 꼭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주고 떠나련다. 모두 주고 더 줄 것이 없으면 고된 삶에 허우적거리다가 병든 사람들의 새 삶을 위해 의학 실험용으로 쓰게 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거들랑 불에 살라 내 어릴 때 뛰어놀던 뒷동산에 재라도 뿌려 주려무나. 살아서 베풀지 못한 내 사랑은 죽어서나 이루어질까. 세상 슬픈 일들이야 곧 잊고 살더라도 이 못난 아비 부탁만은 잊지 말아다오”
아내는 내가 쓴 유언을 읽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언젠가 내가 위암이든 간암이든 암에 걸리게 되더라도 병원에 데려갈 생각일랑 하지 말아요. 헌책방 하던 순이네 엄마 보세요. 침대 팔고 피아노 팔고 집까지 팔아 병원 다녔지만 결국 며칠 전에 죽었잖아요. 하기야 우리는 팔 집도 없지만 어쨌든 당신은 애들 키우며 앞으로 살아갈 생각만 하세요. 괜스레 나 때문에 집안 쓰러지는 꼴 보고 싶지 않아요”
가을, 생각만 해도 마음 설레는 계절입니다. 괭이를 들고 산밭에 올라가면서 문득 지난 시절과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일흔 살까지 살 수 있다면 앞으로 16년 남았습니다. 아침 이슬처럼 잠시 살다 가는구나 생각하니 더 늦기 전에 욕심 따위 버려야 할 게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지깽이와 죽은 귀신도 벌떡 일어나 일손을 돕는다는 바쁜 농사철이 다가옵니다. 해보다 먼저 일어나 일하고, 해보다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철이지요. 농약과 화학비료와 비닐 따위도 쓰지 않고 농사지으려니 어렵고 힘든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래도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할머니처럼 오늘밤이라도 그냥 조용하게 자면서 죽는 것입니다. 죽는 연습을 하기 위해 얼마 전에 십일 동안 단식을 했습니다. 바쁜 농사철이 되기 전에 몸과 마음을 보살피려고 한 단식입니다. 단식을 하면서도 자꾸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먹을 식량과 물이 없어서 굶주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언론을 통해서 자주 보고 들었으니까요.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 발걸음 하나라도 어지럽히지 말라. / 오늘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이 /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힘이 들고 삶이 고단할 때마다 이 시를 마음에 새기며 참아냈답니다. 산다는 것은 흰 눈밭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는 것과 같은 것이겠지요.
나는 지금, 어떤 발자국을 남기며 걷고 있는지 스스로 묻고 또 묻습니다. 까닭도 없이 마음 설레고 괜스레 쓸쓸한 가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