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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화요살롱]‘2시간의 행복’을 찾아서..
오피니언

[화요살롱]‘2시간의 행복’을 찾아서

양산시민신문 기자 398호 입력 2011/10/04 11:12 수정 2011.10.04 10:57



 
↑↑ 강덕구
양산대학교 국제비즈니스일어과 교수
ⓒ 양산시민신문 
우리의 삶 속에서 존경하는 분이 가슴 속에 계신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나 역시 평생토록 진심으로 흠모하며 존경하는 스승이 많이 계신다. 그 분들 중에 특히 두 분은 나의 정신적 지주이시며 삶의 길잡이가 되어주시는 분이다. 한 분은 고등학교 은사님인 이지순 선생님이시고, 또 한 분은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지도교수인 하치근 교수님이시다. 이지순 선생님께서는 올해 95세이시다. 백수를 바라보는 고령이신데도 매일 아침 산책을 하시고,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담백한 성품을 가진 고결한 학과 같은 분이시다. 하치근 교수님께서는 2년 전에 정년퇴임을 하셨다. 젊은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매일 아침 등산을 하시고, 학자로서 교육자로서 국어학계의 거목이시다. 두 분의 공통점은 자기관리가 철저하시며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담백한 성품을 가진 분이시다. 그래서 나는 두 분의 제자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또한 나의 소망은 두 분의 아름다운 성품을 닮고 싶은 것이다.

이제 나도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바라본다. 그래서인지 작년부터 새벽에 잠이 깬다. 여태까지는 일어나면 TV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어느 순간 이런 생활이 너무나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지난 7월 10일부터 편한 복장으로 집을 나섰는데, 이것이 내 생활 속에서 큰 변화의 시작이 된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5시 20분에 일어나 간편한 복장으로 아파트를 나선다. 아직은 어두운 시간이건만, 연세 드신 어르신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그 분들의 모습을 뵐 때마다 삶의 활력소를 느끼곤 한다. 이른 아침마다 노래하는 풀벌레 소리와 귓전에 속삭이는 바람소리는 맑은 공기와 함께 나에게 행복을 전해준다. 양산천은 물이 맑고 깊어서 물고기들이 뛰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밤새도록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이 많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길가에 죽어버려져 있는 물고기들을 볼 때이다. 물속에서 신나게 살고 있을 물고기를 잡아 길바닥에 내동이친 인간들의 무자비한 행동을 생각하면 씁쓸한 마음마저 든다. 이 씁쓸한 마음을 뒤로 하고 좀 더 걷다보면 한가로이 헤엄을 치며 여유를 부리는 오리떼를 만난다. 오리 한 마리 한 마리가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이들이 무리를 이루어 다정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참뜻을 깨닫게 한다. 이들의 아름다운 광경을 감상하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열심히 발길을 옮긴다. 그런데 코끝에서 묘한 냄새가 난다. 이것은 공장에 나오는 매연이다. 순간 기분이 상하기도 하지만, 여기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쯤이야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어느새 지하철 양산역에 접어든다. 시계를 보니 출발한지 1시간 10분이 지났다. 양산역에는 사람들이 배로 늘어난다. 여기에는 남녀노소가 하나가 되어 걷고, 뛰고, 달린다. 나 역시 이들 속에서 하나가 되어 걷고 뛰면서, 무언의 대화 속에서 서로에게 기를 주고받는다. 이때의 행복한 마음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한들거리는 코스모스의 아름다운 자태는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양산역을 돌아서 집으로 오면 2시간 20분 정도가 걸린다. 집에 돌아와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고 샤워를 한다. 숫자 위에 그려진 동그라미를 볼 때마다 오늘도 해냈다는 스스로의 대견함에 또 한 번의 행복감을 누린다.

내가 양산과 인연을 맺은 지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다. 이전과 비교하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매일 아침 느끼는 것이지만 양산은 참으로 살기 좋은 곳이다. 특히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잘 정비된 양산천은 양산만의 자랑거리이며 양산시민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양산천이 좋아 양산으로 이사를 온다는 이야기는 양산발전의 큰 원동력이라 확신한다. 매일 아침 만나는 이름 모를 분들도 나와 똑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매일 아침 2시간 이상을 걷는다. 어떤 조건에 의해 걷는다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조건없이 자연과 이야기하면서 걷다 보면 무한한 행복감에 빠져든다. 오래 살고 건강하기 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니까 행복해지기 때문에 걷는 것이다. ‘행복’은 본디 명사이다. 여기에 ‘하다’가 붙으면 ‘복하다’라는 형용사가 된다. 그런데 나는 ‘행복’이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찾거나, 만들어가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행복’은 찾거나 만들어 가는 자만이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시간 동안 맑은 물, 어여쁜 꽃과 풀, 시원한 바람 등과 마음껏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은 금방 지나가버리고, 내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해진다. 몇 시간 걸은 탓에 몸은 땀에 젖는다. 땀 흘린 후의 기분.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할 때의 기쁨, 그리고 달력에 동그라미를 칠 때의 마음, 조금은 유치하지만 이 모두가 행복이다.  
 
우리가 큰 차를 사거나 큰 집을 사면 그 순간은 대단히 행복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행복한 마음은 이내 사라진다. 이런 행복은 오래 가지 않는다. 하지만, 삶 속에서 느끼는 잔잔한 감동이나 기쁨은 끊임없이 오래간다. 이러한 마음이 바로 “참다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형에 의존한 외적인 행복보다는 무형에 바탕을 둔 내적인 행복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논어에 ‘지지자(知之者)는 불여호지자(不如好之者)요, 호지자(好之者)는 불여낙지자(不如樂之者)’라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삶 속에서의 행복은 사물을 즐길 줄 아는 마음에 있는 것이다. 나는 자연과 벗이 되어 동행할 때의 편안한 마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2시간의 행복’을 찾기 위해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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