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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창간8주년 기념 초대수필]예수님과 부처님이 손을 잡고..
오피니언

[창간8주년 기념 초대수필]예수님과 부처님이 손을 잡고

양산시민신문 기자 400호 입력 2011/10/18 14:10 수정 2011.10.18 01:53




 
↑↑ 서정홍
농부시인
본지 객원칼럼니스트
ⓒ 양산시민신문 
하늘에서 살던 예수님과 부처님이 다정스럽게 손을 잡고, 정말 오랜만에 도시에 내려왔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하도 궁금하여 먼 길을 쉬지 않고 왔으니 무척이나 배가 고팠습니다. 돈이 있어야 밥을 사 먹을 수 있을 텐데, 돈이 없어도 살 수 있던 그 옛날 생각만 하고 돈을 준비하지 못해서 온종일 쫄쫄 굶었습니다. 하도 배가 고파 아파트 문을 두드렸습니다. 아파트! 이름도 괴상했지만 보이는 게 아파트뿐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닭장처럼 생긴 아파트도 사람 사는 곳이라 문을 두드리면 사람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문도 열어주지 않고 안에서 자기네들끼리 중얼중얼하더니 잠잠했습니다. 문 열어주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하도 목이 말라 지나가는 아주머니한테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물이라도 한 잔 마시고 싶은데 집집마다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좋은 방법이 없습니까?”

아주머니는 별 미친놈들 다 봤다는 듯이 싸늘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물은 저기 슈퍼마켓에 가면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으니 얼른 가보시오.”

두 분은 너무나 놀랐습니다. 물을 사 먹다니? 언제부터?

두 분은 하도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 아파트 상가로 갔습니다. 어찌나 자동차가 많은지, 사람 다니는 길까지 자동차를 세워 두었습니다. 상가에는 술집, 노래방, 노래주점, 모텔, 찜질방, 식당, 식육점, 할인점, 은행, 학원, 예배당, 병원, 약국, 한의원들이 빽빽하게 차 있었습니다. 게다가 3층은 전체가 이비인후과, 내과, 소아과, 정형외과, 치과 따위의 병원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얼마나 아픈 사람들이 많기에….

옛날에 없던 것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많이 생겼는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띵했습니다. 두 분은 그제야 만나는 사람들마다 눈빛이 옛날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굶주린 늑대처럼 눈빛이 사나워보였습니다. 무엇에 굶주렸을까요?

그래도 두 분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분들이 절대 절망해서는 안 되지요. 두 분은 수첩을 찾았습니다. 아, 마침 수첩은 두 분 다 챙겨 왔습니다. 그래서 서로 아는 사람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공중전화통을 찾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돈이 없어도 수신자 부담으로 하면 되겠구나 싶었는데, 모두 휴대전화뿐이니 얄팍한 체면에 빌려달라는 말도 못했습니다. 하기야 빌려 달라 한다고 말한들 무얼 믿고 빌려 주겠습니까.

두 분은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날은 자꾸 어두워졌습니다. 더 늦기 전에 돈을 구해, 밥도 먹고 싸구려 여관이라도 빌려 잠을 자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두 분도 이미 깨닫고 있었지요. 특수 자물쇠를 이중 삼중으로 채워 놓고 문을 열어주지도 않는 도시 사람들한테 버림받은 두 분은, 마지막 끈이라도 붙잡기 위해 수십억을 들여 지은 성당과 예배당으로 찾아갔습니다.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돌아오는 건 싸늘한 대답뿐이었습니다.

“이것들이 어디서 행패냐? 돈도 없는 거지 같은 것들이. 원, 재수가 없으려니…”  십일조니 주일헌금이니 교무금이니 기도 접수비니 지랄염병을 하면서 돈에 눈먼 인간들은 두 분을 알아볼 리가 없습니다. 오래 전부터 모든 곳에는 돈이 주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인간들 사는 꼬락서니가 기가 차고 기가 막혔지만, 체면에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얼마나 억지로 웃으려고 애를 썼는지 얼굴에 주름살이 골처럼 깊게 패였습니다. 조금 더 있다가는 숨이 막혀 죽겠구나 싶어 도시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늘에서 처음 내려올 때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화려한 도시에 가면 반갑게 맞이해주고, 할 일도 많을 거라 믿었는데….

두 분은 할 수 없이 꿈을 버리고, 수십년 전부터 애기 울음소리 끊어진 적막한 산골 마을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아직 그곳에는 사람 냄새가 나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신약과 구약을 팔아서 먹고사는 ‘약장사들’은 도시에서 약 팔아먹기에 바빠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노인들만 농사일에 지치고 그리움에 목이 말라 쓰러져 있었습니다. 젊은 것들이 농사지어 노인들을 먹여 살려야 하거늘, 노인들이 힘든 농사를 지어 젊은 것들을 먹여 살리다니, 두 분은 또 다시 놀랐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뒤집혀도 그렇지!

두 분은 들녘에서 돌아온 늙은 농부들과 밤이 깊도록 주거니 받거니 막걸리 한 잔 나누다가, 어느새 술기가 올랐습니다. 신약과 구약을 팔아먹는 엉터리 약장사도, 그 약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고 비싼 돈을 주고 사 먹는 바보 같은 사람들도 없는 외로운 농촌 들녘에 하염없이 어둠이 내려앉았습니다. 돈은 돌고 돌아야 돈이 되는 것인데, 돈은 돌지 않고 사람이 돌아버린 세상에 내려오신 불쌍한 예수님과 부처님은 그만 들녘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한평생 땅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온 늙은 농부들은 잠든 두 분을 고이 안아 집으로 모셨습니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늙은 농부들은 예수님이 누군지 부처님이 누군지 모르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한 식구처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잠이 깬 두 분은 깜짝 놀랐습니다. 낮고 허름한 천장과 빛바랜 벽지와 아무렇게나 놓인 물그릇과 이빨 빠진 오래된 밥그릇들…. ‘여기가 바로 내가 사랑하는, 내가 찾아 헤매던, 가난한 백성이 사는 곳이구나!’ 싶었습니다.

농촌은 신성한 곳입니다. 모든 생명들이 더불어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도시는 일부러 공원을 만들어 나무와 꽃을 심고 호수와 분수를 만들어 눈을 즐겁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사람도 그 속에서 기계처럼 갇혀 살기 때문에 생각도 행동도 갇혀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 속에서 서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고 속이고 다투며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메마른 틈 속에서 어찌 맑은 영혼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농촌은 그렇지 않습니다. 눈에 뵈는 모든 게 다 공원이고 나무고 꽃입니다. 모든 게 열려 있는 공간이라 죄를 짓고는 하루도 마음 편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조그만 생각해 보면 어디에서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화학세제나 일회용품 따위를 많이 쓰고 버려도 당장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함부로 생각도 없이 버리기가 쉽지요. 그러나 농촌에서는 자기가 버린 것이 작은 개울로 흘러 넓은 강으로 가는 게 다 보이기 때문에 함부로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 물을 우리 아이들이 먹고산다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무엇 한 가지라도 함부로 쓰고 버릴 수가 없는 것이지요.

두 분은 이런저런 생각 끝에 산골 마을에 눌러 앉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두 분을 위해 돼지도 잡고 떡도 하고 막걸리도 빚어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오늘도 두 분은 늙고 병든 농부들과 함께 농사지으며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농사일이 힘들어 몸이 지칠 때는 막걸리 몇 잔에 알큰하게 취해 어깨춤 추고, 구성진 목소리로 노래도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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