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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진 물금고등학교 교장 | ||
ⓒ 양산시민신문 |
이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도 마찬가지다. 그저 밀어 넣기에 바쁘다. 제 삶의 바탕을 다듬을 겨를도 없고 그러고 싶어 하지도 않는 듯하다. 기실, 그럴 시간조차도 없을 것이다.
입시를 앞둔 고3의 경우는 예외로 치더라도, 상대적으로 다소 여유가 있는 고2까지도 이 지경이다. 특히, 부모가 더 조급해하는 듯하다. 1등에 대한, 경쟁에서의 승리에 대한 미망(迷妄)이 우리들의 삶을 황폐화시켜 왔음에도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한마디로 무한이기주의인 것이다.
이러다보니, 안타까운 젊음이 생겨나게 된다. 카이스트에 어렵게 진학하고도 견뎌내지 못한 젊음,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해 말초적이고 단세포적인 삶밖에 선택하지 못한 젊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혼자 서 있는 숱한 젊음. 그들의 젊음이 젊지 않은 것을 비단 그들만의 책임으로 돌리면 그만인 것일까.
단언하건대, 그 숱한 젊음이 시들어가는 이유는 ‘참 공부’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가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오로지 외우고 경쟁하는 가짜 공부에 길들여져 자신의 생각의 집을 지을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참 공부’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공부, 스스로 알고자 시작하여 스스로 길을 내면서 가는 공부, 자신이 확보한 영역에 만족하지 않는 ‘유목주의’ 정신을 가진 공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공부가 자신의 삶의 외연을 넓히고 충일한 생활이 가능하도록 하는 ‘참 공부’가 될 것이다.
이 ‘참 공부’는 그러나 단순한 구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데, 다행히도 이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일선 교사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당장 우리 양산지역 선생님들만 보아도 그렇다. 다소 학업과 거리가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아이들의 생각을 키우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다채로운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들이 빛을 발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학부모의 각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 그러한 활동들을 ‘구조화’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다시 말해,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깨우쳐가는 경험이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학습 과정을 ‘구조화’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참 공부’의 가치에 대한 각성이 절실하다 하겠다. 이에 대해 우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으며, 진지한 고민과 함께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