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가지에 줄긋고
순한 죽음 기다리는 늙은 거미와
낮달 자국을 따라
푸르게 돋는 저녁별이
서로 스미지도 못하고
뭉개지도 못하고
한참 전생을 서성이듯이
들창 너머의 노을은
해안선을 밀어 폐선에게 건네주고
폐선은 다시 늙은 거미에게 곁을 내어주는데
미처 서녘에 오르지 못한 것들이
어제보다 시무룩하게 핀 해당화 그늘을 헤쳐
제 몸을 묻을 때
거미는 제 걸음으로 별자리를 놓는다
그새,
삼베 고의적삼 같은 어둠 한 질이
모래톱에 지어진다
김병호
1971년 전남 광주 출생. 200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시집 『달안을 걷다>』(천년의시작,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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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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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절제하고,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는「후문(後文)」은 결국 해질 무렵 어느 바닷가의 풍경을 쓴 것이라 읽을 수 있겠는데, 시를 읽는 내내 오후부터 저녁까지 바닷가 어느 처마를 들여다보는 순하고 착한 눈빛이 떠올려지는 것이어서, 저도 <그늘을 헤쳐/ 제 몸을 묻을>줄 아는 저녁에 가보고 싶어지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