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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산골 농부의 세상사는 이야기]사랑하는 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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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농부의 세상사는 이야기]사랑하는 아들에게

양산시민신문 기자 404호 입력 2011/11/15 10:33 수정 2011.11.15 10:08



 
↑↑ 서정홍
농부시인
본지 객원칼럼니스트
ⓒ 양산시민신문 
아들아, 사람으로 태어나서 누구나 꼭 해야 할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 애비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제 먹을 곡식을 제 손으로 농사지어 ‘부끄럽지 않은 밥상’을 차리는 일이라고. 네가 며칠 전에 이 애비 마음을 알았는지 아니면 스스로 깨달았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처럼 농부가 되어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속으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애비는 마흔여섯 해를 ‘보통 사람’처럼 도시에서 살았다. 남이 주는 월급을 받으며 오직 먹고살기 위해 큰 기쁨과 보람도 없이 그럭저럭 살았지.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할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살았다고 생각하니, 도시에서 살아온 지난 삶이 모두 부질없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서로 속이고 서로 눈치 보며 서로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복잡한 도시에서 사는 것 자체가, 자연과 사람에게 죄가 되는 줄 미처 모르고 살았단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스승이 필요하지. 그 스승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모만 한 스승이 어디 있겠느냐.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도시에서는 부모가 ‘스승 노릇’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지. 그런데 농촌에서는 따로 골치 아프게 ‘스승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되더구나. 왜냐하면 이웃들과 더불어 땀 흘려 일하는 삶과 눈만 뜨면 돈 한 푼 들이지 않으면서도 마음껏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큰 스승인 자연이 있기 때문이지.  

애비가 만난 진짜 스승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농부였어.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농부였지. 농부들은 살림살이는 가난했지만 마음은 넉넉했으며, 몸은 고되어도 마음은 여유로웠어. ‘농가 빚’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면서도 땅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으며, 온갖 자연재해를 입으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어. 농부는 머리로 배운 얄팍한 지식으로 애비를 가르치지 않고, 온몸에 흐르는 ‘정직한 땀’으로 애비를 가르쳤어. 그러니 스승 가운데서도 이보다 더 훌륭한 스승이 어디 있겠느냐. 이런 평범한 진리를 더 늦기 전에 깨달았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아야 할 너희들이 공부와 경쟁에 지쳐 바쁘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 어른으로서 참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어쩌다가 너희들에게 이런 몹쓸 세상을 물려주게 되었을까? 이 모두 부질없는 욕심 따위가 몸속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와 ‘식구’를 갈라놓고 세상을 어지럽힌 거겠지.

아들아, 이 애비가 농부가 되고서야 잘못 살아온 지난 삶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있단다. 자기 잘못을 스스로, 철저하게, 인정하지 않고서야 어찌 흐린 세상을 한치라도 바꿀 수 있으랴. 하늘과 땅이 하나이고, 자연과 사람이 하나이고, 삶과 죽음이 하나인데, 어느 하늘 아래 내 것이 있고 네 것이 있겠느냐. 누구나 구름처럼, 때론 바람처럼 잠시 머물다 갈 것인데, 내 것과 네 것을 따져서 무엇하랴. 사람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내 것이 없단다. 모두 우리 것이지.

아들아, 사람은 공부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란다. 공부하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서 공부해야 하는 것이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은 일하면서 얻는 것이니까 말이야. 언젠가 이 애비가 공부를 하는 까닭은 스스로 가난하게 살고 정직하게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했지. 남들보다 잘 먹고 잘 입고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은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이라고 했지. 공부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내가 배운 것을 남에게 나누어 주고, 사회와 나라를 위해서 쓸 수 있을지 고민을 해야 하거든. 가진 것 많고 똑똑하다고 해서 공부하지 못한 사람들을 눌러서 잘 ­살려고 하는 짓은 사람이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짓이란다. 그래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스스로 가난하게 살기 위한 ‘아름다운 목적’이 있어야 하는 거야.

아들아, 아름다운 목적이 없거든 공부하지 마라. 공부가 너를 망칠 테니까. 이 애비는 네가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밥을 나누어 먹고, 함께 일하며 살았으면 좋겠구나. 그래야 ‘사람 냄새’ 맡으면서 ‘사람 노릇’ 하고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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