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음악칼럼]스륵스륵 쪼르르르..
오피니언

[음악칼럼]스륵스륵 쪼르르르

양산시민신문 기자 404호 입력 2011/11/15 10:45 수정 2011.11.15 10:20



 
ⓒ 양산시민신문 
내가 어릴 적에는 쌀에 돌이 많아 밥을 할 때면 조리로 일구다가 물과 함께 요쪽으로 ‘쪼르르’ 저쪽으로 ‘쪼르르’돌을 걸러내고 밥을 지었다. 아침이면 늘 쌀 이는 싱그런 물소리와 스륵거리는 쌀 문지르는 소리에 잠이 깬다. 그 정겨운 물소리와 엄마의 존재를 느끼며 방을 나와 마루에 서면 네모진 스피커에서 어김없이 들려오는 음악 소리. ‘짠짠짠~ 짠짠짠~ 짠짠짠짠짠~’ 뒤이어 급한 듯이 물결쳐 나오는 강한 아르페지오. 밝고 경쾌한 느낌의 그 음악은 막 동튼 새벽의 맑은 공기와 너무 잘 어울렸으며 어린 마음에 그 음악이 참 좋다고 늘 생각했다. 다시 잠들지 않고 그 곡을 다 들을 때면 하루 종일 내 입안에서 명쾌한 리듬의 피아노 음들이 통통 튀어다니곤 했다. 곡의 제목도 모른 채.

바이엘과 체르니, 노란 책 표지의 소곡집을 거쳐 명곡집을 배우던 어느 날 새로운 곡의 악보를 천천히 훑어 소리를 낸 두 마디의 동기에서 내 마음엔 형언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출렁임이 일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유년의 그 공간에 내가 있는 것만 같았다. 새벽을 여는 그 곡이었다. ‘코시코스의 우편마차’.

밝고 경쾌한 리듬의 춤곡으로 우편물을 나르는 마차의 말발굽 소리와 배달부의 나팔 소리 등을 피아노로 묘사한 표제음악인 ‘코시코스의 우편마차’는 독일의 작곡가 헤르만 네케(1850~1912)의 곡이다. 그는 피아노 소품과 소나티나의 곡들을 작곡하였지만 오늘날엔 ‘코시코스의 우편마차’만 알려졌다. 코시코스는 헝가리 마자르어로 원제목은 ‘카우보이의 우편마차’다.

요즈음에는 손쉽게 많은 명곡을 접할 수 있게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함께 한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그렇게 좋은 음악을 들었던 아이가 음악공부의 첫 출발인 피아노를 시작하게 되고 잠재의식 속에 깔렸던 곡을 접하면서 귀중한 기억을 찾아낼 것이며 감사함을 느끼며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긴 시간 동안 레슨을 해오면서 원생들에게 그 곡을 접하게 해줄 때면 내 마음의 물결은 늘 출렁거렸다. 나는 지금도 음악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였다’인 과거형으로 표현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옥타브로 손가락을 움직여야 하는 어느 정도의 테크닉도 필요한 곡이라 피아노에 입문하고 4년여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그 곡에 진입할 수 있는 수업이 이루어지는데 꾸준히 피아노를 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기초를 잡아서 이제 좀 장식을 할 단계가 되고 제법 테크닉적인 부분이 필요한 곡을 할 수 있을 즈음 잘하고 있던 아이가 피아노를 그만하게 될 때면 정들었던 아이와 매일 만날 수 없음도 아쉽지만 아이의 음악적인 능력을 키우고 감성을 일깨우고자 지극정성을 다했던 나의 마음은 상처를 받는다. 한 아이의 잠재되어 있을 소중한 순간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해 낼 수 없는 깜깜한 기억의 너머 시간으로 묻혀버리는 것은 너무 안타깝지 아니한가.

어릴 때 제목도 모르고 들었던 그 아침의 음악을 조금 더 자라 배우게 되면서 받았던 그 감동. 그 음악을 들을 때면 아직도 설렌다. 그 새벽의 정경과 쌀을 이는 물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깨끗한 공기 속에 존재하던 엄마의 모습. 이 동화와 같은 유년의 기억이 얼마나 소중함인지. 그 기억은 영원할 것이며 끝없이 이어질 '코시코스 우편마차'의 말 발굽 소리가 나의 이 공간에서 힘차게 울러 퍼지길 소망해 본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