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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경 영산대학교 학부대학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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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 데이몬은 여성주의 작가들이 작업을 통하여 여성의 정체성을 찾기 시작했던 1970년대 초창기부터 활동한 작가이다. 그녀의 퍼포먼스 ‘A seven thousand years old woman’(칠천살의 여인, 1977년)은 자본주의의 중심지 뉴욕 월 스트리트 거리에서 신석기 시대의 여성신의 모습으로 나타나 시작되었다. 남성주의 문화 안에서 부여되었던 무거운 짐, 또는 집착으로 표상되는 모래가 든 주머니로 만든 옷을 입고 그것을 하나씩 터뜨린다. 그 안에 남아 있었던 여성의 몸은 억압받아온 자신의 본성을 찾아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침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미네소타 대학에 방문교수로서 그녀의 퍼포먼스 수업 주제는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물’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물의 수호자’로 칭하면서 대학과 지역을 연계하고 과학자, 행정가들과 함께 협동해서 ‘물을 살아 있게끔’ 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작업의 일환으로 자신이 사는 집 뒤에 있는 허드슨강 유역을 매일 두 시간씩 정화하고 주변을 청소하였다 한다. 그리고 1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그 강이 변화해 가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또한 샘물과 수돗물로부터 퍼져 나가는 물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샘물은 움직임이 화려하게 살아 있었지만 수돗물은 죽어 있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이 사진을 통하여 살아 있는 물과 죽어 있는 물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수도국에 가서 수돗물의 오염 문제를 조사하기도 하였다. 살아 있는 샘물이 강으로 흘러오면 그 물은 인간들이 버린 오물로 더럽혀지면서 1천600가지의 세균이 들어 있는 물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정수 과정에서 살균, 소독제로 약품 처리를 해야만 한다. 그래도 우리가 마시는 물에는 여전히 인간에게 해롭지 않다고 알려져 있는 수백개의 박테리아가 살고 있다고 한다. 수돗물은 깨끗해졌지만 샘물에서처럼 활기찬 반응을 볼 수 없다.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죽어 있는 것과 같다. 우리 인간도 도시 속에서 그렇게 시들어 가는 듯하다.
졸업 후 한국에 돌아온 이후 그녀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학진에서 공모하는 97년 국제 공동연구과제로 낙동강 유역의 재개발을 미학적 관점에서 함께하자고 제안하기 위함이었다. 연락 당시에는 중국 성도의 중심지인 허난 수역을 재개발하기 위하여 3년간의 프로젝트를 끝내고 있었다. 그녀는 작업을 끝내고 한국에서 할 수 있다고 흔쾌히 답을 보내왔다. 그 속에는 자신의 작업과 함께 편지 속에 들었던 샘물과 수돗물을 찍은 슬라이드 사진이 있었다. 오염과 주변의 난개발 때문에 도시 문제와 물 오염이 심각한 지저분한 지역이었다 한다. 그곳을 재개발하기 위하여 컨셉은 ‘샘에서 찍은 물방울 사진’의 살아 있는 모습으로부터 디자인을 발상하였다. 지금까지의 개발이 기능적인 측면에서 설계되었다면 오염된 물을 다시 살려내는 일은 복잡계적 접근으로 총체적으로 보아야 한다. 가능한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생태주의적이고 미학적인 관점을 먼저 고려하는 일이다. 물을 살아 있는 그대로 살려내기 위하여 창조적이며 총체적인 역할로서 생태 미학을 중심으로 환경공학적인 관점에서 기능적인 역할을 아우르면서 함께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베티 데이먼이 물에 대한 생태적인 인식과 미학적인 관점에서 과학자, 행정가와 연계하여 협동하는 작업 방식은 그녀의 미적 인간으로서의 살아 있는 삶뿐 만 아니라 세상을 다시 살려낼 수 있는 살아 있는 삶의 전형이다. 살아 있는 물이야말로 인간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정신과 물질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일본 과학자인 에모토 마사루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서 물을 얼려 결정체로 만들어 사진을 찍었는데, 자연수에서 결정체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파동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던 저자는 파동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물질이 물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물을 특수 촬영하여 파장에 따라 느낌을 인식하는 의식이 있는 물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평화로운 음악이나 사랑, 감사 등의 말에 반응하는 물의 결정체 사진은 아름다운 육각수의 모습을 보이지만, 욕이나 흉한 것을 보여 주었을 때의 사진은 찌그러지고 변형되어 있다. 또한 수돗물인 경우에도 좋은 말이나 음악을 들려주었을 때, 다시 육각수 모양으로 스스로 변한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인체의 70%가 물인 바, 인간이 생기 있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사랑과 감사의 마음과 말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오염된 세상의 물질들을 다시 살려낼 수 있는 것은 ‘사랑과 감사’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서양에서 가장 부러웠던 문화는 사랑과 감사의 말을 일상적으로 표현하는 관습이었다. 사랑은 관심 있게 보는 눈부터 싹이 튼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고 또 남을 사랑하는 것은 제대로 볼 수 있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난 그녀의 자연과 합일된 마음이야말로 인간의 분리에서 나온 현대병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