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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상 목사 평산교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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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성실하게 사는 젊은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착하게 살면서 열심히 일했지만 소득이 없어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데 꿈속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동쪽으로 12㎞ 정도 가면 큰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 나무를 베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부부는 노인의 말대로 큰 나무를 찾아 베었다. 그러자 나무가 쓰러지면서 가지에 있던 둥지에서 새알 두 개가 나왔다. 두 개의 새알 중 하나에서 새끼 새가 나와 “다른 새알을 까보면 금반지가 하나 나올 것인데 그 반지에 소원을 빌면 들어줄 것”이라고 말하면서 날아갔다.
젊은 부부는 금반지를 두고 무슨 소원을 빌까를 의논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참으로 희망찬 순간이었다. 집을 달라고 할까, 소를 달라고 할까, 땅을 달라고 할까, 돈을 달라고 할까를 의논하다가 그런 것은 열심히 일하면 얻을 것이니 금반지를 잘 보관하고 열심히 일하자고 결정했다.
그들은 반지를 잘 싸서 옷장 속에 넣었다. 무슨 소원을 들어달라는 요구보다 반지가 있다는 사실에 든든해하며 희망과 기쁨을 갖고 살았다. 그들은 힘든지도 모르고 전보다 열심히 일해 땅도 사고 논도 사고 소도 샀다. 나중에는 큰 집도 장만해 부자가 되었고 아들 삼형제까지 두었다. 이런 동안 소원을 들어주는 반지보다 더 귀한 것이 희망과 사랑, 성실과 믿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아들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평화롭게 숨졌다.
아들 삼형제는 부모로부터 ‘금반지 유언’을 듣고 금반지를 꺼내 소원을 두고 의논을 했다. 그때 큰아들이 말했다.
“우리는 지금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 더 이상 무슨 욕심을 낼 것인가. 부모님은 소원을 풀지 않고 희망 속에서 행복하게 사셨는데 우리가 소원을 풀면 되겠느냐? 금반지 때문에 서로 갈라질 것이 아니라 금반지를 그냥 부모님 묘소에 묻어버리고 희망 속에 살자”
이 의견에 모두 찬성했다. 그래서 그 반지는 부모의 묘소에 묻혔다. 소원을 들어주는 반지는 무덤에 묻었지만 희망은 그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었다.
새해에는 내 자녀가 더 잘되리라는, 사업이 더 번창하리라는, 건강이 더 좋아지리라는, 사역의 현장이 더 풍성해지리라는, 국가의 미래가 더 밝아지리라는 희망을 품고 살자.
그리고 긍정의 마음을 갖자. 낮은 울타리의 글에 보면 ‘옷이 몸에 좀 낀다면 그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고, 깎아야 할 잔디, 닦아야 할 유리창, 고쳐야 할 하수구가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집이 있다는 것이고, 정부에 대한 불평불만의 소리가 많이 들리면 그건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고,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직장이 있다는 것이고, 주차장 맨 끝 먼 곳에 겨우 자리가 하나 있다면 그건 내가 걸을 수 있는데다가, 차도 있다는 것이고,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 그건 내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고, 세탁하고 다림질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면 그건 나에게 입을 옷이 많다는 것이고, 온몸이 뻐근하고 피로하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고,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깼다면 그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고, 이메일이 너무 많이 쏟아진다면 그건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고, 모임을 하고 나서 치워야 할 게 너무 많다면 그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고, 나에게 불만을 토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래도 그가 내게 친구로 가까이 있음이 아니던가요?’
그렇다. 긍정은 내 삶의 윤활유와 같은 것이다. 2012년은 희망과 긍정의 한 해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