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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교단일기]요즘 아이들
오피니언

[교단일기]요즘 아이들

양산시민신문 기자 412호 입력 2012/01/10 10:21 수정 2012.01.10 09:41



 
↑↑ 유승희
북정초등학교 교사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혹은 “안녕히 계이소”하며 장난스러운 인사와 함께 누구는 컴퓨터실로, 누구는 돌봄 교실로, 또 누구는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학원차를 타러 나가고, 그렇게 잠시 텅 빈 교실을 차지하고 있으려면, “선생님, 뭐 하세요?”하며 아이들이 다시 옵니다.

학교 방과후교실을 다니는 우리 반 성이, 현이, 혹은 균이 등등. 수업을 마치고도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컴퓨터, 미술, 수학, 영어, 바이올린 등 학교에서 여는 방과후교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교실 문을 빼꼼 열며 들어와 “뭐 먹을 게 없냐”며 사탕이나 초콜릿을 달라기도 하고, “맛있는 것 좀 사 주세요”(1학년은 11시 20분에 점심을 먹어요)하며 당당하게 요구하기도 하고, 상으로 받은 막대 사탕을 “선생님 이것”하며 주기도 하고, 또는 “선생님 집에 안 가세요, 어제 엄마가요”하며 우리 반 아이들이 있을 때 미처 못 했던 이야기를 재잘재잘 풀어놓다가 “이젠 진짜 집에 가요”하고는 사라집니다. 예전에 우리는 수업만 마치면 곧장 집으로 가서 나가 놀기 바빴는데 ‘요즘 아이들’은 수업 마치고 대부분 학교 방과후교실이나 학원을 가고, 빠르면 예닐곱 시에 집으로 갑니다.

현장학습이나 운동회 등 학교 행사가 있는 날이면 학원을 보내지 말고 집에서 쉬게 해 주면 좋겠다고 문자를 보내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불안한 부모들은 학원을 보냅니다. 대부분 맞벌이를 하는 부모들은 평일 저녁 아이들 공부를 봐 주거나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기가 어렵고, 학교만 보내 공부시키기에는 왠지 불안하고, 악기도 한 가지쯤 능숙하게 잘 다뤄야 하고, 운동도 어느 정도 해야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한 군데 혹은 서너 곳 학원순례를 시키고, 고학년이 되면 귀가시간이 열시가 넘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또래 아이들’과 ‘또래 언어’를 사용하며 ‘또래 문화’를 즐기고, 집으로 와서도 휴대폰이나 컴퓨터로 그 ‘또래 문화’를 이어가는 아이들에게 부모보다 더 큰 영향력을 미치면서 해방구 역할을 하는 것이 ‘또래 무리’입니다.

‘또래 무리’에 끼지 못하고 돌리는 일, ‘또래’가 무리지어 힘을 과시하는 일이 요즘 문제가 되는 ‘왕따’나 ‘학교폭력’의 시작이라고 보면, 교과서에서 배우는 ‘삶, 사랑, 배려, 나눔, 봉사, 아름다움 등등’의 말을 몸으로 경험하고 익혀 나갈 기회는 주지 않으면서 다그치기만 하는 현실과 적당히 모른 척하는 어른들 태도가 아이들로 하여금 그릇된 ‘또래 문화’를 형성하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원숭이 안경선생님’이라며 담임인 저를 놀리기도 하고, 교사의 결정이나 생각이 자신과 다르면 순순히 수긍하기보다는 끝까지 자기의견을 내세우고, 그러다 말솜씨에 밀린다 싶으면 협상을 하려고 하는 우리 반 아이들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하고, 입학하던 날 초롱초롱 맑은 눈빛으로 왕성한 호기심과 무한한 자신감을 보인 이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떨 때는 한없이 무기력하다가 또 어떨 때는 날 선 칼날처럼 되어 가는 걸 보며 요즘은 안타까움과 함께 교사로서 한계를 느끼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나의 빽’인 이 아이들에게 제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여 공감해 주며, 같이 초콜릿을 나눠 먹는 것이 다입니다.

“맛있지? 그치?”, “이 초콜릿 진짜 맛있어요. 어디서 사요? 한 개 더 먹으면 안 돼요?”, “안 돼”, “선생님, 치사하다. 한 개 만 더 주세요”, “그래, 선생님은 치사하다. 그래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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