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시 한줄의 노트]세 번째 골목 세 번째 집..
오피니언

[시 한줄의 노트]세 번째 골목 세 번째 집

양산시민신문 기자 412호 입력 2012/01/10 10:39 수정 2012.01.10 10:01




세 번째 골목 세 번째 집
       
문밖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환청에 시달리던 시절이 혹 있으신가
        
십이월에도 자취 집 앞마당에서
시린 발을 닦아야 하는
청춘의 윗목 같은 시절

전봇대 주소라도 찾아가는지
먹먹한 얼굴로 그가 찾아왔다

두 사람 앉으면 무릎 맞닿는 골방에서
뜨거운 찻물이 목젖을 지나 겨울밤
얼어붙은 쇠관으로 흘러가는 소리
다만 함께 듣고 있었다

야윈 이마로 방바닥만 쪼아대다
겨울의 긴 골목 끝으로 날아가는
크낙새의 목덜미를 바라보았을 뿐인데
바람이 문짝만 흔들어도 누군가
문밖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것만 같아

세 번째 골목 세 번째 집에서
겨우내 혼자 귀를 앓았다


권현형
1966년 강원도 주문진 출생. 경희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95년 <시와 시학사>로 등단. 시집으로, 『중독성 슬픔』(시와시학사, 1995), 『밥이나 먹자, 꽃아』(천년의시작, 2006) 등

------------------------------------------------------------

 
↑↑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시끄러운 소리, 듣고 싶지 않은 소리들로 가득한 세상, 그만 귀를 막고 싶어지는 요즘, 이 시는 청각적 이미지로 애잔한 추억을 들려주는군요. 고요한 울림이 가슴 속안으로 전달되는 이 시의 소리는, <찻물이 목젖을 지나>거나 <바람이 문짝만 흔들어도> 존재로 생동합니다. 구체적인 지시대상을 갖지 않았음에도 무엇인가로 갈망하는 암시적인 원천이 되는 소리. 자취방에 찾아온 그와 차 한 잔을 마셨을 뿐인데 마음은 왜 이리 민감하여 귀를 앓는 것인지, 누구든 쉬 찾지 못해 목을 빼고 이름을 부를까 싶은 세 번째 골목 세 번째 집. 그 소리들이 청춘의 공명통에 들어와 음악이 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