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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발언대]또 하나의 신흥종교, 휴대전화..
생활

[발언대]또 하나의 신흥종교, 휴대전화

양산시민신문 기자 415호 입력 2012/02/07 10:16 수정 2012.02.07 09:23



 
↑↑ 이명화시민기자
pretty645@hanmail.net
 
일간지를 보다가 첫 면에 난 기사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제 두 돌이 넘긴 아이가 기저귀를 찬 채로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 ‘말보다 게임 먼저 배우는 젖먹이들’이라는 제목으로 크게 실린 기사였다. 기저귀를 차고 스마트폰을 하는 아이는 8개월 전 엄마가 스마트폰을 구입하고 난 그때부터 동요가 나오는 애플리케이션 화면을 손가락으로 터치하는 등 간단한 조작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올해 네 살 된 또 한 명의 아이는 갓 돌을 넘긴 두 살 때부터 게임기를 만지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엔 닌텐도 게임기를 쥐어준 채 혼자 놀게 했는데 지금(네 살)은 온라인 게임, 스마트폰 게임 등을 자유자재로 한단다. 게임기를 빼앗기라도 하면 엄마를 때리는 등 난폭성까지 보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게임 연령층이 점점 어려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게임물등급위원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게임을 처음 접하는 평균 나이는 2009년 5세에서 지난해 4.8세로 낮아졌고 일주일동안 게임을 이용하는 횟수도 3~9세 유아, 아동(3.7회)이 9~18세 청소년(3회)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3~6세는 뇌 발달과정에서 뇌량(좌우 대뇌 반구가 만나는 부분)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며 고차원적인 판단력, 사고력, 주의집중력과 관련한 전두엽이 성장하는 시기”이며 “유아기의 게임은 전두엽의 기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뇌의 비정상적 발달을 이끌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작년 9월 기차를 타고 오면서 본 인상 깊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젊은 부부가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바로 앞좌석에 탔다. 이들은 앞으로 향해 있는 의자를 뒤쪽으로 돌려 서로 마주 앉았는데 자리에 털썩 주저앉자마자 고개도 들지 않고 휴대전화에 얼굴을 묻었다. 남자는 휴대전화를 얼굴에 바짝 가져가서 골똘한 표정이었고 등을 보이고 앉은 여자 옆에는 어린 두 아이가 바짝 붙어 앉았다. 여자가 하는 휴대전화 게임을 쳐다보느라 코를 묻고 있더니 좀 있다가 두 아이가 엄마의 휴대전화를 갖고 게임을 했다.

저 젊은 부부의 손에 책이 들려있다면, 아이들 손에 책이 들려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희망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젊은 부부가 아이 하나씩 옆에 끼고 앉아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모습이나 혹은 부부가 마주 앉아 책 읽는 모습을 보며 호기심을 가지고 엄마 아빠가 읽고 있는 책에 얼굴을 묻는 아이들 모습을.

강준만의 ‘전화로 읽는 한국문화사’라는 부제가 붙은 <전화의 역사>에서 그는 휴대전화를 신흥종교라고 표현했다. 휴대전화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은 그것이 없으면 외딴섬에 격리된 것처럼 소외감과 불안을 느끼고 시간의 여백을 견디지 못한다. 그 책에서 카이스트교수 정재승은 요즘 중·고등학생들에게 가장 무서운 체벌은 때리는 게 아니고 휴대전화를 일주일간 압수라는 벌이라고 하였다. 그들에게 휴대전화는 세상과 소통하는 입이자 귀라는 것이다. 정신과의사 김혜남은 <언제 어디서나 세상과 연결, 휴대전화에 중독된 요즘 아이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휴대전화에서 들리는 친구의 음성은 그들의 불안을 잠재우는 안정제가 된다. 즉 언제고 필요하면 연결하고 끊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어디선가 자신을 불러주고 자신의 호출에 즉각적인 답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을 주는 것이다. 외롭고 불안한 아이들은 점점 휴대전화에 중독되어 간다”

어린아이서부터 어른들까지 휴대전화는 어디서든지 갖고 놀고 게임을 즐긴다. 군중 속에서 고독하고 불안한 현대인들은 거기서 위로를 찾는다. 애초엔 소통의 도구로 탄생한 전화가 소통의 대상이 되어간다. 사람들을 자신도 모르게 그것에 묶여 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휴대전화의 주인인가 노예인가. 한 번쯤 심각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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