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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미경 영산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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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이야기하는데, 기숙사비가 40만원이란다. 나는 한 학기인 줄 알았다. 시에서 우수 고등학교로 지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내 아들은 혜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내가 내는 세금이 건설적인 곳에 쓰이는 것 같아서 위안이 되었다. 아, 내가 사는 도시가 교육에 투자를 하는구나. 이 도시가 말뿐인 교육도시라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나의 오해였구나 하면서 잠시 반성도 했다. 그런데 한 달에 40만원이란다. 지난번에는 20만원대였고, 기숙사 신청을 다하고 나니, 시의 지원이 없어져서 40만원이 되었다고 하더란다.
그 아이는 왜 그렇게 돈이 갑자기 늘었는지 알 수 없다고. 어떤 친구는 기숙사에서 나갈 것이라고 했단다.
그러다가 지역 신문을 보니 무슨 조례를 바꾸어서 그렇게 되었고, 기숙사비 보조금을 지급하기 위한 예산을 책정하였지만 그 조례 때문에 지급할 수가 없단다. 나는 행정이나 정치를 몰라서 그 말을 잘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다른 것도 아니고 아이들 교육인데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 우리 아들딸들 아닌가. 그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의 미래를 맡길 것이 아닌가. 중간에 규칙을 바꾸는 것은 요즘 동네 축구에서도 안 하는 행동일 것이다. 요즘은 조기 축구회도 경기 시작하기 전에 규칙을 정했으면 그대로 따르지는 않겠는가. 다른 것도 아니고 교육 아닌가? 행정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무슨 형평성을 위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면 그 어느 누구도 그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 중에서 교육을 위하여, 아이들 편에 서줄 사람은 없었는가. 솔직하게 설명하고 같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는 없었겠는가. 방문한 학부모들에게 사실이 아닌 것, 뻔히 보이는 말로 그 자리를 모면해야 했을까. 그 사람은 지역의 대표가 될 자격이 없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우리의 표가 없었으면 이런 사람들은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사는 이 도시는 교육 이외의 것에는 돈 쓰는 것이 지나치게 후하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 동네의 한 아파트 단지는 산 중턱을 잘라서 지었는데, 친구를 태워주기 위해 그곳에 한 번씩 갈 일이 있다. 그곳에는 2~30 미터마다 빽빽하게 신호등이 있어서, 신호를 지키고 서 있으면 뒤차가 빵 소리를 내어서, 그냥 지나가야 한단다. 이런 곳에 신호등을 이렇게 촘촘히 세워서 모든 시민이 법을 어기게 만드는 데 쓰이는 돈은 누구 주머니에서 나와서 누구 주머니에 들어갈까. 어느 곳에는 색동 가로등을 너무 촘촘히 많이 세워서 그 아래를 지나면 전파가 약한 라디오 방송은 신호를 잡지 못한다. 여기에 쓰이는 돈은 누구 주머니에서 나왔을까. 과연 가장 잘 쓴 것일까. 늘 의문이 들었다. 어느 마을에는 가로수를 너무 촘촘히 심어서 나무가 자라지를 못하는 것을 볼 때도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는 중에 국회 정무위원회가 부실 저축은행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는 기사가 신문에 났다. 은행과 보험 고객들이 비상금으로 맡겨둔 예금보험료에서 1천억 가까운 예산의 대부분을 강제로 끌어, 예금 보장 한도인 5천만원 초과 예금액과 후순위 채권 투자액의 일부를 보상하는 데 쓸 계획이란다. 참 생선 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긴 꼴이다. 성실하게 일하고 열심히 절약해도 5천만원의 예금을 못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의원들은 아는가. 높은 수익을 기대하면서 위험이 따르는 곳에 투자한 치리에 눈이 밝은 사람들, 그들이 시끄럽게 한다고 다른 고객의 돈으로 생색내는 것은 도둑 심보이며, 의원들 개인 돈부터 그 피해 보상액으로 내놓으라는 그 신문 사설의 주장은 참 공감이 간다.
이제 우리 좀 지혜로워지자. 선거가 다가온다. 너도나도 선심성 복지를 공약으로 내건다. 이제 이렇게 국민의 세금, 시민의 세금으로 자기 표를 위해 선심 쓰거나 마음대로 예산을 자르는 사람들을 기억하여 두었다가, 절대 표를 주면 안 된다. 시끄럽게 떠들거나 로비하는 사람들을 위해 중간에 말을 바꾸고, 조용히 있는 많은 시민, 국민을 우롱하는 자들도 꼭 기억해 두었다가 표를 주지 말자. 그들이 두려워해야 할 조용한 다수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야 한다. 불꽃 같은 눈으로 살펴서 자기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는 정치꾼들이 발을 들여 놓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거짓말을 퍼뜨리고, 나중에 그것이 거짓이라고 밝혀져도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고 사과하지도 않는 자들도 잘 살펴야 한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정의로운 사회가 아닌가. 성실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대우받는 사회 아니겠는가. 바른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이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해야 하는지 본을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실제 삶에서는 나는 엄마 게가 된다. 나는 옆으로 기어도 너희는 바로 기어야 한다고. 참 공허하고 부끄러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