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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이운용교수의 인도비즈니스 ④ 비즈니스 - 1
무역은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지 마라

양산시민신문 기자 417호 입력 2012/02/21 11:25 수정 2012.02.21 11:26




↑↑ 인도 중산층이 거주하는 그레이트노이다 아파트

 
↑↑ 이운용

한국외대 인도어과
한국외대 지역대학원 정치학 석사
인도 첸나이무역관 관장
한국인도학회 부회장(현)
영산대 인도연구소장(현)
영산대 인도비즈니스학과장(현)
 
최초 상담은 사실만 전달하고 시간낭비 마라


어느 날 갑자기 잘 모르는 인도인 바이어로부터 우리 상품에 관심 있다는 메일이 들어온다. 그러면 우리는 새로운 바이어를 만난 기분에 온갖 정성을 다하여 이에 답변한다. 세일즈를 하는 입장에서 이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인도와의 거래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우리 기업인들이 인도 바이어로부터 받아보는 문서를 보면 대부분이 “우리는 사업다변화를 위하여(diversification)…” 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금방 구입할 것처럼 접근한다. 또한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업이나 품목을 제시하면 무엇이든 관심 있다고 하며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것처럼 대답한다. 이는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인도인들은 항상 자기사업 아이템을 찾기 때문에 무엇이든 가능성 여부를 타진하려고 집적거려 보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도 바이어가 어떤 것을 물어오거나 제안을 하면 간단한 정보와 우리의 의사만 표시해 주고 내버려 두어야 한다. 만에 하나 중요한 바이어를 놓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은 절대 하지 않아도 된다. 만일 필요하면 몇 년 후라도 반드시 다시 찾아오는 것이 인도인의 속성이다.

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응대하지 말아야 하는지는 다음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인도 기업인이 대형 빌딩을 건축할 계획이라고 해보자. 그러면 5~6년 후 완공한 다음 필요한 각종 물품을 지금 당장 살 것처럼 자료를 요청하고 진지하게 상담을 진행한다. 즉 5년 후에 필요한 제품의 정보를 지금 입수해두려는 것이다.

건축을 위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자료를 모으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상대에게 당장 구매할 것처럼 기대를 갖게 하고서 자신은 정보 수집만으로 그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현재 우리 제품 설명서와 오픈된 가격 정도의 사실만 전달하면 될 뿐이다. 제품의 장점은 적극 홍보하되 가격 협상은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기업 비밀이 될 만한 사항은 당연히 오픈해서는 안 된다.


 수출서류 미비는 돈 떼이는 지름길


한국의 Y산업과 인도의 메트로폴리탄(Metropolitan Leather Goods Pvt Ltd)사 간에 일어났던 가죽수출 사기사건이다. 메트로의 대표는 마흐타니(Mahtani), 수출담당 매니저는 토마스(Thomas)다. 인도 기업의 이름을 밝히는 이유는 메트로가 10여년에 걸쳐 여러 한국 기업을 번갈아 가며 수출 사기를 쳤기 때문이다.

메트로가 Y산업에 가죽을 수입하겠다고 한다. 양 측은 팩스로 문서를 주고받으며 가격ㆍ색상ㆍ판매조건 등을 협의하고 샘플에 대해서 합의가 끝나자 Y산업은 신용장(L/C)을 발부받고 생산에 들어갔다. Y산업 측에서는 제품 생산 후 선적하기 직전에 L/C조건 중에 검사(IC : Inspection Clouse)조항이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Y산업은 메트로에게 검사조항을 나중에야 발견했음을 통보하고 선적 이전에 긴급히 검사를 할 것인지 아니면 검사 없이 그대로 선적할 것인지 팩스로 회신을 요청했다. 메트로는 명확한 지침 없이 회신에 늑장을 부렸고 Y산업의 요청에 구두로 제품이 샘플과 같으면 선적해도 좋다고 확인했다. 검사 없이는 선적하지 말라는 문서는 보내지 않았지만 Y산업은 그동안 교섭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서로 믿고 결정해 온 것을 보아 문제없으리라고 판단하여 선적을 했다.

메트로는 물건이 뭄바이 항구에 도착하자 그때서야 L/C조항 불이행을 사유로 대금지불을 거절했다. Y산업이 그동안 주고받은 팩스를 근거로 메트로 측의 행동에 항의하자 메트로는 L/C조건을 DA(일종의 외상거래)조건으로 전환해 물건을 우선 통관하고 자신들이 검사한 후 물건에 하자가 없으면 3개월 후 대금을 보내겠다고 제안했다.

Y산업은 메트로의 소행이 괘씸해 이를 거절하고 대금 미지불시 쉽백(Ship Back)하겠다고 강경하게 대응했다. 쉽백은 물건을 받는 자에게 전달된 서류와 메트로측의 포기각서를 인도 항만에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메트로가 말로는 쉽백하라고 하면서 서류와 포기각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이에 Y산업은 첸나이 무역관에 해결을 요청했다. 뭄바이는 첸나이에서 비행기로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곳이어서 우선 시외전화로 메트로의 해결 의향을 타진해 봤다. 메트로는 Y산업이 L/C조항을 위반한 것이며 자기들은 아무 책임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에 Y산업이 쉽백을 요구하는데 왜 포기각서를 주지 않느냐고 물었다. 메트로는 이 일로 인해 자신들이 시간을 허비했으며 서류작업에도 많은 수수료가 들었으니 Y산업이 비용을 부담해야 서류와 포기각서를 내겠다고 주장했다.

이미 지쳐버린 Y산업은 이에 동의하고 서류 작업비용 250달러를 메트로에 보냈다. 그 후 Y산업은 실제로는 쉽백해도 악성재고만 될 뿐이므로 무역관에서 다른 바이어를 찾아 20%정도 낮은 가격에라도 판매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메트로에는 절대로 안 팔겠다고 했다.

무역관은 첸나이에서 B라는 구매자를 물색해 메트로에 전화해 관련서류를 B가 지정한 통관사에 보낼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메트로는 Y산업으로부터 250불을 비용으로 받고도 의도적으로 포기각서 제출을 지연했다. 필자는 마침 뉴델리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뭄바이 총영사관에 계신 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분이 직접 메트로와 접촉해 Y산업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의도적인 시간지연으로 피해 커져


이렇게 시간이 지연되자 뭄바이 세관에서는 공매를 하겠다는 문서를 무역관에 보내왔다. 그런데 조사해보니 인도에서는 바이어가 인수 거절한 물건을 나중에 공매를 통하여 싸게 인수해 가는 수법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쉽백을 가능한 한 지연시켜 수출업자가 물건을 포기하도록 바이어와 세관공무원이 협조하기도 한다고 했다.

무역관은 통관업자를 인도 업체 대신 우리나라 합작업체인 S사를 쓰기로 결정했다. S사를 통해 알아보니 메트로는 포기각서를 뭄바이 세관에 제출하기는 했으나 해당 화물 통관과는 관계없는 다른 부서에 제출했다. 이는 분명한 의도적 행위였다. 메트로의 계속적인 지연으로 통관이 되지 못하고 세관의 공매를 무역관이 세 번이나 연기신청 하는 등 몇 달이 소요됐다. 이후 S사의 하이데라바드 지사장이 직접 뭄바이 항만을 방문하여 협조를 구한 다음 통관을 완료하여 B에 제품을 넘겨줬다.

그러나 B 역시 인도 업체로서 악질적인 상혼을 유감없이 발휘해 대금을 받는데 무려 4개월이나 걸렸다. B는 당초 샘플을 보고 제품이 매우 좋아 즉시 구입하기로 하고 수입대금의 일부를 선불로 Y사에 보냈다. 나머지는 제품 인수 시 잔액을 지불하기로 했다. 그러나 S사가 통관 후 제품을 B에게 직접 전달하고도 양도시점에 대금을 즉시 받지 못했다. B는 무려 4개월이나 시간을 끈 후에야 선심 쓰듯 잔액을 Y사에 송금했다. B는 이 과정에서 통관비용 절반과 세관 수수료를 Y사에 떠넘겼다.

이번 거래의 교훈은 신용장을 접수할 때 세부내용을 자세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경우 교섭과정에서는 단 한 번도 언급이 없다가 신용장에만 여러 조항 중의 하나로 IC조항을 슬며시 넣어 우리기업이 실수하도록 유도했다. 또 1개월 전에 선적일을 통보 받고도 검사방법이나 검사업체 선정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다.


구두약속 대신 문서로 받아야


국제전화를 통한 구두약속은 믿지 말고 반드시 문서로 확인 받아둘 필요가 있다. 선적 이전에 시간에 쫓겨 구두약속만 믿고 선적함으로써 클레임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분명히 우리 기업의 실수다. 인도에서는 서류미비 등 수출업체 측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를 최대한 활용해 가격을 깎거나 인수 거절 후 세관을 움직여 쉽백을 고의로 지연시킨 다음 공매라는 절차를 통해 헐값에 인수해 가는 사례가 매우 많다.

↑↑ 뉴델리의 대형 쇼핑몰

↑↑ 첸나이 인근에 공사 중인 한국기업 현지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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