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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이상배가 안내하는 세계의 명산
길이 끝나는 곳에서 등반은 시작된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418호 입력 2012/02/28 14:47 수정 2012.02.28 02:49
중부 알프스를 대표하는 마터호른<4천478m>





서부알프스를 대표하는 것이 몽블랑산군이라면 중부알프스를 대표하는 것은 마터호른이라 하겠다. 마터호른은 프랑스어로 몽세르뱅이라부르고, 이태리에서는 몬테체르비노라고 부른다. 꿈의 봉우리 마터호른은 1865년 7월, 25세의 젊은 알피니스트 에드워드 윔퍼에게 정상을 허락한다. 그러나 하강 중 4명의 대원이 추락사하면서 마터호른은 비극을 남기고 알프스황금기는 막을 내린다. 이 사건으로 사회적문제가 발생되어 초등자 윔퍼는 사고경위서를 제출하는 등 법정에서 심한 여론재판을 받았다. 불멸의 초등기록을 세웠지만 박수는 커녕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받고 알프스라는 무대에서 퇴장하고 만다.

그 이후로 알프스는 등반보다는 관광의 대상지로 통속화되었다. 그럼에도 선구자인 윔퍼는 새로운 등반대상지를 찾아 나서는데 남은 삶을 보낼 무대를 유럽 이외의 다른 지역으로 돌린다. 방랑자가 된 것이다. 40세가 되던 해에 남미 에쿠아도르에 있는 짐보라초(6천310m)산을 초등했다. 그리곤 <안데스 등반기>를 집필하여 영국 지리학회로부터 금메달을 수상하였다. 오랜 기간을 거쳐 알피니스트로서 명예를 회복한 것이다.


 
↑↑ 이상배
·양산대학 생활체육과 졸업
·히말라야 에베레스트(8천848m), 초오유(8천201m), 가셔브롬2봉(8천35m), 로체(8천516m) 등정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천895m), 북미 맥킨리(6천194m), 남미 아콩카구아(6천959m), 유럽 엘부르즈(5천643m) 등 5개 대륙 최고봉 등정
·(사)대한산악연맹 경남연맹 부회장
·체육훈장 기린장 수상
 
체르마트는 스위스의 샤모니


2011년 8월 1일 아침 몽블랑 등반을 성공적으로 마친 등반대는 전세버스를 타고 마터호른 등반에 나섰다. 샤모니몽블랑을 출발한 버스는 아르장띠에를 거쳐 마티니로 넘어가 체르마트로 향한다. 샤모니에서 스위스 체르마트까지는 버스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중간에 한 번 쉬고 타쉬터미널에 도착했다. 모든 차량은 여기가 종점이다.

체르마트는 스위스와 일본이 합작 개발해 만든 환경도시다. 기름을 사용하는 차량은 진입이 금지되고 있다. 만년설을 보호하고 공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레만호에서 아득히 보이는 마터호른은 스위스 로잔에서 기차로 두시간이면 갈 수 있고 만년설 위에서 사시사철 스키를 탈 수 있어 전 세계 스키어들로 북적이는 레저스포츠 천국이다.

타쉬터미널에서 편도열차표를 구입하여 카트를 끌고 바로 기차에 오른다. 유럽을 갈 때마다 피부로 느끼는 것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번갈아 탈 때마다 무거운 짐이라도 불편함을 못 느끼고 아주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40여분 올라가 종점 체르마트역에 도착했다. 역 바로 앞에 있는 반호프호텔로 이동해 여장을 풀었다. 수년의 세월이 흘러도 체르마트 주변의 호텔이나 레스토랑들은 모두가 예술품처럼 제 자리에 잘 정돈되어 있다. 반호프호텔 역시 3대째 변함없이 운영하고 있다. 예약을 확인한 다음 현산팀은 1층에 자리잡고 뫼산팀은 4층 대형룸에 자리를 잡았다. 룸의 형태가 이곳도 도미토리룸이다. 등반대의 경우는 취사와 무거운 짐 때문에 이런 곳을 사용하는 것이 편하다. 호텔방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해먹고 쉴 겨를도 없이 등반장비를 챙겨 마터호른 등반을 위해 역 앞에 대기하고 있는 전동차를 이용하여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이동했다.

날씨는 화창하지만 아직까지 등정자가 없다는 정보에 마음이 무겁다. 훼른니산장까지 등반하는 걸로 일정을 잡고 케이블카 종점인 슈바르츠(Schwarzsee 2천583m)에 내리니 마터호른이 바로 눈앞에 보인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트레킹과 하이킹을 즐기고 있다. 모두가 여유가 있어 보인다. 각자 무거운 배낭을 메고 느린 걸음으로 지그재그길을 따라 북동릉 코스인 회른니릉으로 올라간다.


훼른니산장 아래 텐트 구축


마터호른에는 총 4개의 대표적인 등반루트가 있는데 주능선인 회른니릉(초등자 : 윔퍼)과 츠무트릉(초등자 : 머메리) 그리고 리온릉(초등자 : 카렐)과 북벽인 프르겐릉(초등자 : 슈미트형제)이 있다.

마터호른에서 윔퍼의 초등 못지않은 위대한 등반을 꼽으라면 단연 슈미트형제의 북벽 초등과 1965년 발터 보나티의 동계북벽 단독초등이다. 이런 등반기록을 보면 인간은 가장 나약하지만 가장 잔인하다는 말이 실감난다. 슈바르츠에서 내려 4시간이 지나 훼른니산장에 도착했다. ‘초지의 뿔’이라 부르는 마터호른은 구름에 쌓인 위압적인 모습으로 코 앞에 서 있다. 우린 훼른니산장 아래쪽 비탈진 돌밭에 텐트사이트를 구축하고 간신히 거대한 돔텐트(9~10인용) 2동을 설치했다. 식사를 준비하는 사이 김태훈 대장과 정인석 대장은 낙석이 심한 등반루트를 정찰하러 올라갔다. 기상관계로 아직까지 마터호른을 등정한 사람이 없다고 전한다. 기도라머가“등반은 항상 초등이다”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훼른니산장(3천260m) 캠프사이트에서 바라본 마터호른은 신비롭지만 낙석의 위험도 커 보이고 이등변삼각형으로 뿔처럼 솟은 거대한 벽은 무서운 모습으로 치솟아 있어 등반의 어려움을 예고하는 듯 하다. 김 대장과 정 대장이 루트파인딩을 마치고 돌아와 장비정리를 마친 대원들과 함께 텐트 안과 밖에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등산의 고전으로 통하는 <어느 등산가의 회상>의 에밀 자벨은 “그 어떤 깊고 저항하기 어려운 본능 때문에, 인간은 자신을 높이면서 오르고 또 오르고 끊임없이 오르기를 원한다. 등산가가 가장 뾰족한 봉우리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는 항상 최고의 봉우리를 남몰래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가올 등반을 위해 잠을 청해본다. 적막을 깨고 김 대장과 정 대장이 리드가 되어 두 개의 팀으로 나누어서 정상등정을 위해 훼른니캠프를 출발했다.


실패에서 배우는 교훈


나는 워키토키를 머리맡에 두고 현대중공업팀 텐트에서 자게 되었다. 훼른니의 밤은 깊어만 간다. 세상 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새벽 3시경 정 대장으로부터 무전이 날라왔다. 대뜸 구조가 필요하니 헬기를 불러달라는 급박한 요청이다. 상황을 물으니 자신이 앞장서다가 마지막 상단부 돌맹이가 빠지는 바람에 추락했다고 한다. 얼떨결에 잠에서 뛰쳐나와 훼른니산장으로 달려갔다. 체르마트산악구조대에 헬기구조 요청을 했더니 빠른 답이 나오질 않는다. 마음이 답답해서 산장 안을 들락거리며 다시 간곡히 부탁했더니 구조대가 헬기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준다. 안절부절못한 가운데 시간이 흐른다. 마음이 자꾸만 초조해지는데 헬기소리가 체르마트쪽에서 들린다. 빨간색 헬기가 새벽공기를 가르며 순식간에 날아와 훼른니산장에 내려 장비를 챙기더니 곧바로 마터호른 벽에 붙어 잽싸게 구조활동을 한다. 등반을 중단하고 병원으로 내려갔다. 진단결과 타박상이다. 천만 다행이었다. 

모험사건을 모두의 협조로 마무리를 잘하고 귀국하게 되었다. 이번 등반을 통해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하겠다.

↑↑ 마터호른 정상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 케이블카를 이용해 발리스산군의 경치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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