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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화요살롱]정치, 아무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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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살롱]정치, 아무나 하나

양산시민신문 기자 420호 입력 2012/03/13 14:58 수정 2012.03.13 03:02




별다른 뉴스가 없으면 정치가 잘되어간다는 뜻이다. 정치란 원래 이렇듯 수수한 것이다. 문제는 정치가 사람의 욕심과 관련되다 보니 언제까지나 우아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는 기본적으로 의견의 불일치와 관련이 있고, 제한된 자원을 권위 있게 배분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을 지닌 정치의 본질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 바로 선거다. 선거는 머리를 깨고 싸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머릿수를 세는 것이 낫다는 구상 즉 평화롭게 해소하자는 데서 출발한 것이다.


선거란 정의 실천할 사람 뽑는 일


여기 쌀 한 가마니가 있다. 15세 성냥팔이 소녀, 27세 건강한 대졸 청년, 40세 모자 가정의 여성 가장, 65세 은퇴 노인 이 네 사람이 이걸 나눠 먹어야 하는 상황이다. 누가 많이 먹어야 할까. 부모의 보살핌 없이 성냥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15세 소녀가 많이 먹어야 할까. 아니면 왕성한 생산활동을 하는 건강한 대졸 청년이 많이 먹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똑같이 나눠 먹는 게 나을까. 과연 바람직한 기준이 무엇일까. 그리고 누가 나서서 그 기준을 세워야 할까.

여기서 곧 정의의 문제와 엘리트의 문제가 등장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선거의 의미이다. 선거란 정치 공동체에서 정의를 실천할 주체를 선출하는 일인데 그 주체가 누구여야 할까. 한 마디로 내공 깊은 고수여야 한다. 그리고 그 내공의 내용이란 능력과 덕성을 겸비하는 것이다. 

사실 강호에선 굳이 겨뤄보지 않더라도 고수들끼리 서로 먹어준다. 누가 누구에게 배웠으며 누구를 어떻게 이겼다는 소문만으로도 상대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수의 세계에선 오히려 피가 덜 튄다. 고수들끼리 합을 나누는 장면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비장하고 낭만적이다. 그리고 그런 고수가 되려면 오랜 절차탁마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짜장면 한 그릇을 사 먹을 때도 어느새 다 먹었나 싶게 맛깔스러운 집이 있는가 하면 도통 면이 줄지 않는 집도 있다. 짜장면 맛있게 만드는 작업,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 3분이면 닦는 구두의 경우도 그렇다. 순식간에 반짝반짝 빛나게 닦아주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구두약만 떡칠하고 마는 돌팔이도 있다. 역 앞에 앉아 구두 근사하게 닦아주는 일도 제대로 하려면 최소 3년의 내공은 쌓아야 한다고 한다.

장자(莊子)에 포정해우(庖丁解牛)라는 우화가 있다. 소를 기가 막히게 잡는 포정이 있었다. 그는 소의 덩치뿐 아니라 근골과 맥락을 한 눈에 선명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헛손질 없이 춤추듯 칼을 쓴다. 베고 쪼개고 하지 않으니 칼도 상하지 않고 소도 쾌감을 느끼며 해부된다. 그런 경지의 포정도 처음엔 소의 덩치에 눌려 어쩔 줄을 몰랐었지만 오랜 내공 쌓기로 고수가 된 것이다. 이렇듯 주방장이든 구두닦이든 소잡이든 이른바 생활의 달인이 되려 해도 절차탁마가 필요하다면, 사람을 섬기고 세상을 다루어 정의를 실천하려는 엘리트라면 어떠해야 하겠는가.

지금 정치의 계절, 선거의 대목이다. 두 가지만 꼭 주문하고 싶다. 19대 총선에 출사한 엘리트들은 우선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절문(切問, 치열하게 따지는 것)하고 근사(近思, 실사구시적으로 연구하여 답을 찾는 것)하는 인재들이었으면 좋겠다. 출사표가 내용이 있고 분명해야 한다. 하지만 전문가가 지녀야 할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덕성이다. 굳이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실력 있는 소인보다는 차라리 무능한 대인이 정치에 더 어울린다고 할 정도로 품성이 중요하다.

2012년 한국의 정치계가 필요로 하는 인물은 고래 같은 사람이다. 볼륨 있고 의연하며 위신 지키는 풍도를 갖춘 인물이 그리운 시점이기 때문이다. 손해를 보더라도 기꺼이 명분과 자존심을 견지하는 호연지기를 가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대한민국 국회가 해야 할 첫 번째 작업은 국회의 위신을 스스로 세우는 일이다.


좀팽이보다 큰 포부 가진 고래 기대


아랫것들 다투는 소리는 그만 듣고 싶다. 당파 싸움으로 자폭하는 처참한 모습도 더는 안 된다. 우물 안에 들어앉아 봉창 두드리는 한심한 꼴 이제 그만 보고 싶다. 게리맨더링을 해서라도 굳이 소선거구제를 고집하고, 제 살 깎는 대신 자리를 하나 더 늘려 꼭 300명을 채우는 번번한 얼굴들, 보기에도 딱하다.

국회의원 선거가 이제 한 달 남짓 남았다. 인물됨과 출사표를 겨루는 고수들의 아름다운 결투를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상처뿐인 영광이라도 하나 건지겠다고 서두는 좀팽이들 말고 자신보다 낫다면 기꺼이 져줄 수 있다는 포부를 가진 고래들이 많이 출몰했으면 하는 기대, 끝까지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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