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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인테리어 달인 박진주 씨를 만나다
내 손으로 직접 집 꾸미는 셀프 인테리어, 그 자체가 삶이자 낙

노미란 기자 yes_miran@ysnews.co.kr 입력 2012/03/27 10:05 수정 2012.03.27 11:54
셀프 인테리어 달인 박진주 씨를 만나다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 사생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도 여러 번이다.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 탓에 의류업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위기가 기회였던 것일까. 의류업체에서 배운 재봉틀 기술에 미적 감각이 더해져 작은 가게를 운영해볼 수 있을 만한 실력이 됐다. 셀프 인테리어의 길이 시작된 것이다. 박진주(36, 남부동) 씨의 이야기다.




박 씨의 집은 언제나 봄이다. 사시사철 푸르게 피어있는 화초 덕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인테리어의 영향이 크다. 연분홍 파스텔 계열로 통일된 박 씨의 집은 따뜻하면서도 포근하다. 가구는 물론, 방문과 가전제품, 심지어 현관문까지 여느 아파트와 다르게 화사하다. 

일반적인 가정집보다는 예술 작품에 가까워보이는 이 집은 박 씨의 작품이다. 7년 전 이사온 박 씨는 모든 것을 홀로 구상하고 홀로 작업했다. 박 씨는 ‘쉐비 로즈 하우스’라는 별칭도 붙였다.

박 씨는 “결혼하면서 ‘인테리어를 남다르게 바꿔보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었어요. 특별한 롤모델도 없었고요. 그저 그림 그리고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해서 시작했는데 몇 년 만에 이렇게 달라졌죠”라고 설명했다.

박 씨는 부산진시장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재료를 구입하고 쇼파 커버나 소품을 재단해 만든다. 중고 가구를 저렴하게 구입해 리폼하는가 하면 화분에도 색을 입히고 소품으로 멋을 낸다. 

이 같은 소질은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 들판에서 꺾은 꽃으로 화관을 만들어 쓸 정도였다. 가족의 영향도 컸다. 박 씨의 아버지는 그림 그리는 것을 즐겼고, 화초 가꾸는 것도 좋아했다. 뜨개질을 잘했던 언니에게선 뜨개질 기초를 배웠다. 박 씨가 네 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 역시 손재주가 좋은 편이었다.

박 씨는 “제가 1남 2녀 중 막내인데요, 식구들 모두 이런 쪽으로 관심이 많았어요. 그 중 제가 제일 별난 것 같아요. 지금까지 이러고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타고난 미적 감각에 디자인 공부 욕심도 났었다. 하지만 대학은 먼 이야기였다. 대신 의류업체에 취직해 기술을 익혔다. 20대 중반에는 액세서리 노점을 열고 남대문에서 물건을 떼다 팔았다. 그러다 인테리어 가게를 열게 됐다. 직접 소품을 만들어 팔고 만들기 강좌도 열었다. 하지만 셀프 인테리어의 꿈은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박 씨는 “가게가 번화가와 떨어진 데다 가진 돈이 없으니 동네 가게 정도로 그쳤죠. 투자 한 번 못 해보고 문 닫아 아쉬웠죠”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최근엔 지인들로부터 종종 공방 권유도 받는다. 하지만 10년 전 실패 경험 때문에 선뜻 열지 못하는 것이다.
박 씨는 앞으로 여건이 된다면 집에서 홈스쿨 방식으로 패브릭 작업이나 가구 리폼 등을 소규모로 가르쳐볼 생각이다. 홈스쿨을 통해 성공 가능성이 보일 때 공방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몇 년 간 밤새워가며 작업한 탓에 최근엔 박 씨는 건강에 이상이 오기도 했다. 시력이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열정은 여전하다. 한 번 붓을 잡으면 몇 시간이든 작업에 매진한다. 박 씨가 이렇게 몰두하는 이유는  뭘까. 돌아오는 답은 간단했다. “전 이렇게 못하면 아마 큰 병이 날지도 몰라요. 이것이 내 삶이고, 낙이니까요.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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