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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이상배가 안내하는 세계의 명산]
천천히 걷고, 천천히 먹고 생각마저도 하라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2/03/27 11:00 수정 2012.03.27 11:07
히말라야 렌죠패스~고쿄피크 트레킹




↑↑ 아마다블람(6천856m)을 멀리 뒤로한 굼중 마을 안. 호텔이라 써놓은 숙소 앞을 야크들이 지나고 있다
카트만두는 산악여행자의 메카


 
↑↑ 이상배
·양산대학 생활체육과 졸업
·히말라야 에베레스트(8천848m), 초오유(8천201m), 가셔브롬2봉(8천35m), 로체(8천516m) 등정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천895m), 북미 맥킨리(6천194m), 남미 아콩카구아(6천959m), 유럽 엘부르즈 (5천643m) 등 5개 대륙 최고봉 등정
·(사)대한산악연맹 경남연맹 부회장
·체육훈장 기린장 수상
 
히말라야의 대표적인 트레킹 루트로는 쿰부지역의 에베레스트 트레킹과 랑탕ㆍ코사인쿤도 트레킹, 그리고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꼽는다 이번 렌죠패스를 넘어 고쿄피크 트레킹을 나선 사람들은 필자를 포함해 모두 8명이다.

카트만두에 도착하니 기상이 별로다. 아니나 다를까, 루클라에 5천여명의 트레커들이 카트만두를 오가는 히말라야 국내선 비행기 결항으로 인해 발이 묶여있다고 한다. 우리들 역시 루클라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제 때 탈 수 없었다. 그래서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유적지 킬티푸르와 보드 나트을 다녀왔다.

라마불교 성지 보드 나트 (Boudha Nath)는 왕으로부터 물소 한 마리와 고기로 덮을 수 있는 땅을 약속받은 노파가 고기를 얇게 썰어 넓은 땅을 얻었고, 그 자리에 사원을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네팔에서 가장 큰 스투파가 있는 곳이다.

티베트인 사람들이 최고의 성지로 여기고 있고 사원 주변 지역이 티베트 유민의 집단 거주지여서 사원에는 항상 마니차 (이것을 한 바퀴 돌리면 경전을 한 권 읽는 것과 똑 같은 공을 쌓는다는 티벳불교의 성구)를 돌리는 순례자들로 붐빈다.


남체바자르에서 고소적응훈련


이튿날 오후 늦게 간신히 루클라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루클라에 도착하자마자 현지 고용인들과 함께 곧바로 팍딩으로 올라갔다. 원래 계획은 몬죠까지 가려고 했는데 카트만두에서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몬죠까지는 무리라고 판단했다. 히말라야트레킹을 할 때는 항상 뜻하지도 않은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앙삼두 셀파가 잡아준 팍딩 에베레스트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남체로 올라선다. 남체 바로 밑 가파른 길을 만나자 일행들의 걸음이 주춤거린다. 히말라야트레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천천히 걷는 것이라는 조언을 해준 터였다. 천천히 걷고, 천천히 먹고, 생각마저도 천천히 하라. 이것이 히말라야를 걷는 수칙이다.

해발 3천440m의 남체바자르는 티베트에서 넘어온 상인들과 셀파 부족들의 경제활동 중심지로 매주 토요일마다 장이 선다. 오늘은 금요일인데 먼길을 걸어온 장사꾼들이 미리 터를 잡고 진을 치고 있다. 잠링 게스트하우스에 이틀을 보내려고 했는데 주인인 체담 셀파는 몰려든 트레커들로 방이 없다고 한다. 성수기에 나선 트레킹이라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옮겨 방을 잡았다.

남체바자르에서 이틀을 보내는 동안 굼중을 돌아오는 고소적응 트레킹을 하루 정도 하기로 했다. 여태껏 히말라야를 찾으면서 나와 묘한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마일라는 쿡과 앙삼두라는 셀파가 굼중호텔 바로 앞에 살고 있어 이곳에 들러 점심을 먹기로 했다. 마일라의 집에서 전통술인 창을 맛보고 강주마로 돌아서 남체로 내려왔다.


16년 만에 만난 셀파


이틀 후 다시 카고백을 챙겨 남체를 출발, 타메(3천800m)로 올라갔다. 가다가 중간에 타모라는 곳에서 티베탄 음식으로 점식을 먹는데 모두가 현지적응을 잘 하고 있다. 3천m가 넘어가면 현지 음식을 고소 영향으로 잘 먹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다행이다. 타메에 도착하니 저녁시간이다. 저녁을 먹고 게스트하우스 레스토랑에 다 모였다. 마침 보름이라 이곳 마을에 보름축제가 있는데 우리가 머물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에도 늦은 시간 동네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왔다. 함께 춤을 추고 노는데 그들의 춤은 2박자로 특이하다. 막춤으로 같이 놀며 외국인이라는 이질감 속에서 인간이라는 동질감을 찾아본다.

다음날 4천m가 넘는 랑텐으로 가다가 도중에 외딴집에서 앙푸르바 셀파를 만났다. 푸르바는 내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마중나온 것처럼 보였다. 그는 1996년 초오유 등반때 생사를 같이했던 셀파다. 히말라야에서 간혹 보았지만 자기 집에서 이렇게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앙푸르바가 만들어주는 따끈한 오렌지주스를 마시며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추억을 나누었다.


열악한 잠자리 각오해야


랑텐에 도착하여 숙소에 들어가니 말이 게스트하우스지 움막과 다름없다. 여기도 방 구하기가 힘들다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내일이면 이번 코스에서 가장 힘든 마의 랜죠패스를 넘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일행 중 한분이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을 호소한다. 심한 고소증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 고도에서 무조건 1천m 이상 내려가는게 상책이다. 그러나 나는 고소약을 건네주며 쉽게 포기하지 말고 다시한번 몸을 추슬러 가보자고 청해본다. 고도를 높일수록 걸음도 자꾸만 처지고 가다서기를 반복한다. 아침부터 하루종일 걸어 랜죠고개에 올랐다.

5천430m 고개마루에 올라서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와 검은 귀신 마칼루를 조망할 수 있는데 날이 어두워 감상도 제대로 못하고 내려가야 하는 운명이다. 길이 너무 위험해 보인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힌 산길은 잠시라도 한눈을 팔 수 없다. 지칠대로 지친 몸으로 고쿄리에 힘들게 도착했다.


무릉라고개를 넘으니 내리막이


고쿄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마체르모까지 내려가는데 고쿄로 올라오는 트레커들이 많이 보인다. 마체르모 롯지에 들러 네팔 전통음식인 달밧을 시켜먹고 곧 바로 돌레로 내려갔다. 길은 거의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돌레(4천m)에서 점심나절쯤 모두 만났다. 돌레 게스트하우스 여주인 앙도카라는 지난 2001년 초모랑마 청소등반때 키친걸로 함께했던 사람이다. 당시 그녀는 임신 6개월의 몸으로 초모랑마 베이스캠프(5천400m)서 일했는데, 그때 뱃속에 있던 아기가 그녀 앞에서 재롱을 떨고 있었다.

돌레에서 자기로 했다가 시간이 충분해 삶은 감자로 요기를 하고 포르체 탱카로 내려갔다. 포르체 마을 아래 위치한 포르체 탱카에 도착하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레스토랑에서 난로에 불을 훈훈하게 피우고 정다운 시간을 보냈다. 포르체 탱카에서 자고 일어나 무릉라 고개를 올랐다. 이 고개만 넘으면 남체까지는 내리막으로 평탄한 길을 만난다. 천천히 무릉라고개에 올라서니 어머니의 보석상자라 부르는 아마다블람(6천856m)과 담세르쿠, 그리고 콩데피크가 눈앞에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세계 산악인들의 연인이라 부르는 아마다블람은 쿰부 골짜기에서는 다른 봉우리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독보적으로 보인다. 2004년 동계등반으로 경남의 젊은이들과 정상에 올랐던 곳이다. 저멀리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와 세계4위 고봉 로체가 구름에 덮혀 가물거린다.


겸손함을 배워가는 여정


굼중(3천800m)으로 내려서는 비탈길에서 포르체에 살고 있다는 셀파를 만났다. 나를 알아보고 “나마스테”라고 인사를 건넨다. 히말라야는 나를 키워준 곳이다. 남체에 잠링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었다. 이제 하루만 걸으면 된다고 일행들을 안심시킨다. 잠링 게스트하우스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날 루클라로 가는데 비행기가 일주일째 뜨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루클라에 도착하니 롯지 안에 사람들이 만원이다. 우리 일행들도 불길한 예감에 표정이 어둡다. 하지만 기상관계로 비행기가 결항 된다면 도리가 없는 일이다. 우린 여기서 히말라야를 배우는 것이다. 기다림의 한계에서 인내도 배우고 겸손도 배우는 것이다. 히말라야는 내 맘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들이 수시로 벌어진다. 히말라야에 머무르는 동안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노 프라블럼(No problem)이다.

히말라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늘 웃음과 겸손으로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우리들의 짜증을 다 받아준다. 그럴 때마다 한편으로 미안함을 지울 수가 없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웅장한 히말라야도 대단해 보이지만 히말라야를 신앙처럼 믿고 살아가는 그들 역시 대단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트레킹코스
카트만두 - 루클라 - 팍딩 - 남체바자르 - 굼중 - 남체 - 타모 - 타메 - 랑텐 - 렌죠패스 - 고쿄피크 - 마체르모 - 돌레 - 남체바자르 - 루클라 - 카트만두

↑↑ 라마불교 성지 보드 나트는 동양 최대의 불탑인 스투파가 있는 곳이다

↑↑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카타가 휘날리고 있는 두드강 상공의 현수교를 지나는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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