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손 원장! 잘 지내제? 우리 집 큰 애가 이번 주말에 선을 보는데 며느릿감 한 번 봐 줄 수 있나?”
사실 궁합관계는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보아주지 않는다. 아무리 궁합이 좋아도 부부가 서로 이해하고 인내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지만 평소 신세를 지던 선배의 부탁인 터라 거절하기 어려웠다. “형님, 며느릿감 사주는 아직 모른다고요? 그럼요, 나이만 가지고 궁합을 볼 수는 없죠” 나중에 보자고 둘러댔지만 평소 버릇대로 혼자서 아드님의 명조를 본다.
“거 참! 사주 좋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인오술(寅午戌) 화국(火局)에 병화(丙火)가 천간에 투출하여 화(火)의 기운이 천하를 다 태울 듯 맹렬하다. 그러나 지지에 물을 흠뻑 머금은 진토(辰土)가 자리 잡아 수(水)가 적절히 거센 불을 잡아주니 가히 청룡이 불(火)을 토하는 멋진 사주다.
배우자 운은 어떤가? 일지 배우자궁에 정재(正財)가 함초롬히 자리 잡았으니 볼 것 없이 현모양처다. 금년과 내년에 걸쳐 인수(印綏) 운이 들었으니 결혼은 쉽게 성사될 것 같은데…. 아뿔싸! 배우자궁이 올해 인수 운과 충(冲)을 맞고 있다.
사주에서 나의 힘이 약할 때 인수가 오면 내게 큰 힘이 된다. 그래서 인수는 길신(吉神)이라고 본다. 또 인수는 관인(官印)을 상징하니 계약이나 혼인의 성사를 의미한다. 하지만 인수가 충(沖)을 당할 때는 문서에 금이 가니 계약의 난항 또는 파기로 보고 혼인 여부는 매우 불투명해진다.
게다가 이번 경우는 지지에 암장된 재성 천간이 인수와 충을 하고 있으니 드러난 문서는 흠결이 없을지라도 실제 문서의 이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금이 갔다. 사주의 암시가 맞는다면 청실홍실로 아름답게 엮이기보다 신부측의 감추어진 사정으로 서로가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테면 학력을 속였다거나 지나간 청춘의 아픈 사연이 나중 드러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여자 쪽이 을(乙)의 입장이다. 시대에 뒤진 이러한 사고방식은 서서히 사라지는 추세지만 형님 집안의 유별난 보수적인 가풍이 걱정된다.
모든 일은 인연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쉽게 출발했지만 힘든 결혼생활을 하는가 하면 어렵게 시작했지만 결국 행복하게 사는 부부들도 있다. 궁합이 좋다 나쁘다로 성스러운 혼인에 인간이 개입해서는 안 될 것이다. 궁합은 원만한 결혼생활을 위해 두 사람의 타고난 성격의 장단점과 보완할 부분을 알려주는 데서 그쳐야 한다.
결혼의 결(結)자는 길(吉)한 것을 실(絲)로 잇는다는 의미다. 살면서 길(吉)한 일을 만드는 것은 결국 부부의 몫이다. 결혼은 혼인신고서에 도장만 찍어도 되지만 부부는 인고와 이해의 세월을 거쳐서 만들어진다. 화창한 4월 화촉을 밝혀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연인들에게 한 편의 시로 축가에 갈음한다.
생각하면 우리들의 별은 얼마나 쓸쓸한가!/ 이 쓸쓸한 지구라는 별을 함께 지나가자고/ 이제 한줄기 빛이 되는 두 사람./ 멀리 있었으니 서로의 빛을 바라볼 줄 알았고/ 어두웠으나 서로에게 다가갈 줄 알아/ 오늘 드디어 두 손을 잡는다. (중략) <아름다운 날에 붙여, 박미라>. 오늘도 월하노인은 달밤에 홀로 앉아 혼인부를 뒤적이며 짝을 지운다. “나는 이제 청실 홍실로 당신들의 연을 이으니 그대들이여 그 인연을 소중히 하라”고 중얼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