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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경 영산대학교 자유전공학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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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동안의 활동이 끝나가던 연말 모임에서 대화는 정치 문제로 넘어가고 있었다.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제외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모아지고 있었다.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정말 필요한 사람들은 소외되고, 말로만 떠들어대는 사람들만 요직을 차지한다는 불평이 쏟아졌다. 이성적 논리와 사고가 발달한(L-mode) 사람들 때문에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제외됐다’는 소리는 L-mode 사회 중심에서 감성적인 사람들(R-mode)이 느끼기 쉬운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이성적 사고가 발달한 사람들로 요직이 채워지면 감성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이해받기 어렵다. L-mode 사람들에게는 R-mode 사람들의 창의적이고 감성적인 능력이 ‘제멋대로’가 되어 버린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그들의 의견을 듣다가, 보색(반대색)과 관련해 이러한 상황과 연관해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말문을 열었다.
보색은 색상환에서 각각의 반대편에 있는 색으로 서로에게 없는 색이다. 예를 들어 빨강에는 녹색이 없다.
“자연에서의 색이 왜 아름다워 보일까요?” 모두 대답 대신 귀를 기울였다. “자연에 보이는 각각의 색 속에는 삼원색(섞어서 만들 수 없는 세 가지 원색, 즉 빨강, 노랑, 파랑을 말한다)이 다 섞여 있기 때문이에요. 원색이라도 서로에게 반대되는 색(보색)이 있어 서로 공통된 색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게 마련입니다. 자연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색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실제로 컴퓨터로 색분해를 해보면 자연의 색에는 100% 원색은 없고, 삼원색의 다양한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즉, 각각의 자연이 지닌 색에는 그것의 반대색인 보색이 들어있지요. 보색의 존재 때문에 조화롭게 보이는 이유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빨강의 보색인 녹색으로 배합되는 자연물을 생각해 보지요. 동백꽃과 나뭇잎, 장미꽃과 나뭇잎, 크리스마스의 대표적 꽃인 포인세티아 등 수없이 많습니다. 단지 꽃뿐만이 아닙니다. 담쟁이가 빨갛게 물들다 만 곳에는 묘한 보색의 아름다움이 남아있지요.
그러나 물감의 원색으로 장미나 동백꽃을 그리기 위하여 빨강과 녹색의 원색을 사용해서 그려 보면 아무리 형태와 질감, 구도 등이 좋아도 유치해 보입니다. 서로 섞일 수 없는 원색의 배색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색상환에서 서로 가까운 색이나 흰색을 섞으면 파스텔 톤으로 조금 나아지기는 하겠지만 자연에서 보이는 보색을 머금은 조화로운 맛보다 덜합니다. 물감에서 가까운 색끼리의 조합에는 보색이 들어있지 않아 공유할 수 있는 색이 없는 셈이지요. 그래서 이들 각각의 원색에 보색을 조금이라도 섞으면 하나하나의 색 안에는 결국 삼원색이 다 들어있게 되어 서로의 색을 공유하는 부분이 있게 됩니다. 이 때문에 자연의 색처럼 조화로와 보이지요. 그래서 인공으로 만든 물감으로 칠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색에 보색들을 조금씩 섞어주어야 조화로운 배색의 그림이 됩니다.
이러한 보색의 이치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개성이 다릅니다. 서로 조금도 섞일 수 없는 원색적인 사람들이 만나면 반대 의견을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지 못해 다툼이나 전쟁이 됩니다. 이들이 자연의 색처럼 조금씩이라도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어 서로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변화하지 못하면 닫혀있는 집단이 되겠지요. 이런 집단은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체되겠지요. 요즈음 같이 변화가 많은 시기에 L-mode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제가 다가오면 창조적일 수 없어 결국 새로움에 적응하지 못해서 도태되기 마련입니다”
이와 같이 인공 물감의 색에서처럼 아무것도 섞이지 않아 튀는 원색과 같이 자신이 보고 있는 관점만을 옳다고 생각하는 인식은 자기 관점에서 가까운 것만 크다고 생각하는 원근법적 관점이다.
특히 L-mode는 애매한 정보를 싫어하기 때문에 자기중심에서 다른 것들을 제외해버리고 쉽게 다름을 차이가 아니라 틀림으로 인식한다. R-mode처럼 새로운 것을 호기심을 가지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당연히 이 관점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도 배려할 수가 없다. 말로는 배려한다지만 이런 사람은 권력이 쥐어지면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다름을 이해하는 것은 자연에서 보이는 조화의 이치와 같이 자신 안에 보색의 다름을 품을 수 있을 때, 다른 색과의 다름과도 공존하는 일이 가능하다. 자신 안(내면)의 보색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지면의 한계상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우선 외면의 다른 것들 사이에서 차이와 틀림을 보아야겠다. 곧 국회의원 선거일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제 유권자에게는 다름과 틀림을 구분해서 한 표를 행사하는 일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