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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 인생은 아름다워, 아름다운 내 황혼
전쟁의 아픔 가위와 빗으로 이겨냈다

노미란 기자 yes_miran@ysnews.co.kr 입력 2012/04/09 09:39 수정 2012.04.09 09:38
열일곱 때 6.25 참전해 왼발 절단된 조점백 어르신

지역소외계층에게 이용봉사하며 삶의 기쁨 찾아



여든을 바라보는 조점백(79, 남부동) 씨는 국가유공자다. 이용사를 꿈꾸던 열일곱에 6.25를 겪었다. 의무병으로 참전했던 조 씨는 부상자를 구하려다 포탄 파편을 맞아 왼발을 잃었다. 왼발목이 절단된 조 씨는 제대하고도 상처 부위가 아물지 않아 후유증에 시달리다 무릎 위쪽 부분까지 절단하게 됐다. 평생 걸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족으로 다시 설 수 있게 됐다. 비장애인의 눈에 조 씨의 걸음걸이는 어색해 보이지만 조 씨는 다시 가위를 잡았다. 이용사의 꿈은 접었지만 ‘이용봉사’로 또다른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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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씨의 집은 어렸을 때 학교를 제때 다닐 수 없을 만큼 가난했다. 아버지는 조 씨가 어렸을 때 일본으로 징용당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어머니는 행상으로 가정을 꾸렸다. 경남 창녕에 살았던 조 씨는 열일곱에 부산으로 건너가 이용사 시험을 봤다. 조 씨는 “학교 공부는 거의 꿈꿀 수도 없었죠. 집이 어려웠으니 차라리 집에 도움될 수 있도록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회상했다.

우여곡절 끝에 열일곱이라는 어린 나이에 이용사 면허를 취득한 조 씨는 이용 기구를 사러 대구로 올라갔다.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6.25가 터졌다. 열일곱 치고는 키가 큰 편이었던 조 씨는 이용기구를 사러 가던 길에 군간부의 눈에 띄어 군에 징집됐다. 조 씨는 “당시엔 참전할 수 있을 정도의 체격만 되면 길에서 잡혀갔어요. 갑자기 끌려가는 바람에 이용기구는 사지도 못했죠. 집에 연락도 못했고요”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렇게 시작한 군 생활은 조 씨가 살아온 열일곱 인생만큼이나 순탄치 않았다. 의무병으로 부상자를 구하려다가 포탄 파편으로 다리가 절단된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해 결국 무릎위 부위까지 절단하고 의족을 하게 됐다.

제대한 뒤에는 부산에서 이용사로 일하다가 고향인 창녕 읍내에서 이용원을 열었다. 하지만 수입이 변변치 않아 이용원은 다른 이에게 물려주었다. 이용사의 꿈을 접고, 자동차 수리공장에서 잠깐 일하던 중 국가유공자로 지정받았다. 하지만 가위와 빗을 손에서 놓지 않은 채 틈나는대로 복지기관과 요양시설 등에서 이용봉사를 해왔다. 지역에서 홀로 사는 어르신이나 몸이 불편한 장애인도 조 씨의 주요 고객이다. 조 씨는 4년 전 남부동 주공7단지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관리사무소의 도움을 받아 조 씨만의 봉사 공간도 만들었다. 

그곳에 의자와 거울, 가위와 헤어드라이기 등 머리 깎는 데 필요한 기구들을 마련했다. 문 앞에 전화번호를 공지해 누구나 언제든 머리를 깎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자창 안쪽에서 하다 보니 어려운 점도 있다. 조 씨는 “제가 움직이는 데 불편한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가 머리를 깎아줘야 하는 사람들 역시 몸이 불편한 분이 많습니다”고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누구나 접근하기 편한 공간으로 자리를 옮겨 더 많은 이에게 봉사하고 싶다는 조 씨.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이 세상 떠나면 평생 누워지내야 할 텐데, 그 전까지 제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봉사하는 게 제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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