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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광수 정치학 박사, 한국시민윤리학회 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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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처럼 예측이 어려웠던 선거도 없었다. 이른바 전문가 거의 대부분이 야권의 압승을 예견했었고, 당위로 봐서도 그렇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결과는 연대한 야권이 과반은커녕 원내 1당도 확보하지 못하는 참패였다. 8년 전 17대 총선 결과를 최악의 기준으로 삼고 유권자들의 매운 회초리를 각오했던 여권이 오히려 의석을 압도하게 되었다. 참 뜻밖이다.
사실 선거는 비전과 구도 그리고 인물로 결정된다. 우선, 비전은 여야 모두 신통치 않았다. 복지 확대 등 국민에게 영합하는 소리만 늘어놨지, 정직하고 책임감 있는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다음으로, 구도는 야권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했다. 현 정부의 거듭된 실정과 실책만으로도 선거는 해보나 마나 한 상황이었다. 오죽하면 집권여당이 당명까지 바꾸며 비상 모드로 선거를 준비했겠는가. 게다가 야권연대로 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져 1대 1 형국이 되었다. 역대 선거 중 야권이 이처럼 기막힌 구도를 가져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 끝으로, 인물 즉 공천문제는 그래도 여당이 다소 나았다는 평가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오십보백보다. 이런 선거라면 범야권은 압승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결과는 152대 140의 역전패였다.
결과가 의외였던 만큼 분석할 내용도 많다.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 리더십 즉 선거의 구심점 문제다. 이번 총선은 현 정부의 임기 말에 치르는 선거이기도 하지만 또한 연말에 새 정부를 뽑는 대선을 가늠해보는 의미도 갖는 선거였다.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들은 모두 이 의미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의 역할은 단연 결정적이었다. 한명숙은 체급 비교가 안 되었고, 이해찬은 세종시에, 문재인은 부산과 경남 그나마도 이른바 낙동강 벨트에 묶여있었다. 우군이라 믿고 있는 안철수는 바른말만 하면서 상식선에서 움직였을 뿐 구체적인 보탬은 되어주지 않았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닌 대장군 박근혜가 고만고만한 장군들이 제각각 약진한 야권연대의 대형을 흔들어버린 것이다. 물론 그 변수가 총선의 판을 뒤집는 데는 유용했지만, 대선에도 효과가 있을지 아니면 독이 될지는 다시 지켜볼 따름이다.
두 번째, 야권연대의 한계 문제다. 선거공학으로만 보면 야권연대는 필연이다. 18대 의회가 보수진영 2대 진보진영 1로 되어 있으니 진보가 진영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생존의 길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 시장선거에서 연대의 단맛을 깊이 본 야권으로선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하지만 함정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선거공학적 구도를 비전과 연결시키는 데 실패한 것이다.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정책을 조율하는 데 소홀했다.
지금 우리 유권자들의 이념적 성향을 거칠게 나누어보면 3대 4대 3이라고 할 수 있다. 3의 보수와 3의 진보 그리고 중도가 4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4의 중도는 늘 균형추로 스윙 보트를 해 오고 있다. 이 구도에선 보수든 진보든 결국 가장 많은 유권자가 모여 있는 중도로 수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거 때의 이슈와 추세에 따라 중도 우 또는 중도 좌가 결정된다. 중도엔 연령적으로도 40대가 주류다. 40대는 유권자 비중도 가장 높고 투표도 가장 깊게 고민하여 선택하는 세대다. 그들이 때로는 변화를 때로는 안정을 선택하면서 정권의 성격을 결정해 오고 있다. 이 대목에서 야권연대는 구도를 만드느라 급급하여 그들을 만족시킬만한 비전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그들 40대 중도는 한미FTA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반미정서로 확산되는 것은 찬성하지 않는다. 제주도가 평화의 섬으로 가꾸어지기를 바라지만 제해권을 확보할 해군기지의 필요성도 인정하고 있다. 북한 문제에 대해선 민족적 공감대 위에 북한 인민들을 동정하지만 3대 세습 독재에 대해선 어불성설이라 느끼고 있다. 야권 연대는 이런 문제에 대해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요령부득의 입장을 나타냈을 뿐이다.
셋째, 정서 문제다. 선거가 꼭 이성적 선택은 아니다. 정서에 휘둘려 작게 보이는 불씨가 의외로 큰불을 낼 수도 있다. 이번 총선에선 김용민 파문이 그 불씨였다. 분노에 차 각박하고 비루한 욕설을 해대는 것이 우리 시대의 보편이라곤 하지만 그럴수록 품격과 너그러움을 더 찾게 된다. 착하고 멋있는 리더를 기대하는 인물 대망론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파문은 본인에게나 야권 전체에게나 선거의 정서를 망가뜨린 참 딱한 변수였다.
선거는 늘 난장으로 끝난다. 난장 한판이 마무리되었다. 장은 닫혔고, 사람들은 흩어졌다. 정열 끝엔 허망이 남는다. 그 허망을 달래주는 정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