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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이운용의 인도비즈니스]
비즈니스는 상인 카스트와 하라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2/04/17 15:12 수정 2012.04.17 03:26




↑↑ 인도 금융 및 상업중심지 뭄바이 국제공항 내부

뉴마하라자 - 인도경제의 새로운 지배자


인도어로 ‘마하’(maha)는 크다ㆍ위대하다는 뜻이며 ‘라자’(raja)는 왕 혹은 지배자라는 뜻이다. 따라서 뉴마하라자는 새로운 왕, 새로운 지배자라는 의미로 현재 인도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경제계의 대그룹 총수를 지칭한다.

1997년의 인도의 10대 그룹은 1위 타타 그룹(TATA-뭄바이)부터 시작하여 비를라 그룹(B.K./K.M. Birla-뭄바이, 캘커타), 릴라이언스 그룹(Reliance-뭄바이), 알피지 그룹(RPG-캘커타), 타파르 그룹(L.M. Thapar-델리), 스픽/맥 그룹(SPIC/MAC-첸나이), 바자즈 그룹(Bajaj-뿌네), M&M 그룹(뭄바이), 비를라 그룹(G.P./C.K. Birla-델리,캘커타), 에스코트 그룹(Escorts-델리)의 순서다.

1999년부터 정보통신분야의 인포시스, 사티얌, 위프로, NIIT, HCL, 펜타미디어 등이 급성장하였고, 2008년 포브스(Forbes)가 발표한 글로벌 1천개 기업에 들어간 인도기업 14개를 보면 이동통신기업 바르티에어텔, 릴라이언스 커뮤니케이션즈가 이름을 올렸고, 스테이트뱅크오브인디아(SBI), ICICI뱅크, HDFC의 3개 은행이 등장했다.

주요 기업의 흥망사는 산업변천 과정 및 지리적 위치와도 관련 있다. 60년대에는 캘커타 일대의 쥬트산업이 몰락하였으며, 70년대에는 뭄바이, 아메다바드를 무대로 활동하던 구자라티 상인들 즉, 섬유귀족으로 불리던 기업들이 사라졌다. 80년대에는 델리를 근거로 한 주요 기업들이 쇠퇴했다. 이는 내륙 한복판에 위치한 델리보다 항구도시 뭄바이가 상대적으로 급속히 성장함으로써 전반적인 경쟁에서 밀린 것으로 보인다. 델리와 뭄바이 상인은 많은 부문에서 경쟁하였다. 그러나 갈수록 뭄바이와 델리의 격차가 커졌다. 항구를 낀 뭄바이 기업들에게 정보에서 뒤쳐진 델리 기업들은 산업발전에 따른 물동량 증가마저 신속히 처리하지 못함으로써 이중으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정보와 물류의 중요성을 보여준 예다.

1939년의 50대 기업 중에서 1997년 50대 기업까지 살아남은 회사는 7개로서 모두 뭄바이를 중심으로 한 중서부 지역 기업들이다. 150년 동안이나 인도 경제를 이끌고 있는 타타 그룹, 현재 재계순위 2위인 비를라 그룹, 19위의 마파트랄 그룹, 22위의 와디아 그룹(Wadia), 랄바이 그룹(Lalbhai), 스리람 그룹(SIEL), 비노드도시 그룹(Vinod Doshi) 등이 그들이다. 이러한 그룹의 대부분이 교역을 주업으로 하는 상인 계층에서 시작하여 패밀리 비즈니스로 운영되는 것이 인도 경제의 주요 특징이다.
 

↑↑ 인도 금융 및 상업중심지 뭄바이 국제공항 내부

 
인도경제 장악한 패밀리 비즈니스
 
인도 기업과 사업을 하려는 우리 기업인이 알아야 할 중요한 사항 중 하나가 ‘패밀리 비즈니스’라는 개념이다. 패밀리 비즈니스란 기업경영에 있어서 패밀리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여기서의 패밀리는 가족이 아니라 같은 업종의 사람들끼리 단합한 정서적 조합과 같은 것이다.

인도 잡지 비즈니스투데이에 의하면 1947년 독립당시 인도 기업은 거의 대부분 18개 비즈니스 패밀리의 소유였으며 50년이 지난 1997년에는 상위 500대 기업 중 461개를 비즈니스 패밀리가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카스트의 4개 계층은 승려 계층인 브라만, 전사 계층인 크샤트리아(샤트리아, 챠트리아), 상인 계층인 바이샤, 노예 계층인 수드라로 나누어지는데 비즈니스 패밀리는 상인 계층인 바이샤(바니아)에 속한다.

인도 비즈니스 패밀리의 주요 특징은 개인의 목적보다는 패밀리의 공동목적을 우선한다는 데 있다. 또한 패밀리의 명예는 같은 비라다리 내에서 얼마나 좋은 배우자를 맞이하느냐에 달려있다. 이러한 전통은 커뮤니티 구성원간의 동질성을 강화시키고 그들의 상업 활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비즈니스 패밀리는 상인 카스트(trading caste)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인도 인구의 약 2%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6%라고 주장하는 문헌도 있다. 일반적으로 상층 카스트의 엘리트들과 농부 같은 중간 카스트들은 상인 카스트를 아주 무시한다.

그러나 상인 카스트들은 같은 커뮤니티 내의 봉급생활자를 하찮게 취급한다. 따라서 같은 커뮤니티내의 형제나 친척의 기업에서 봉급생활을 하는 멤버에게는 자신의 사업을 하도록 압력을 넣는다. 늘어나는 식구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패밀리 비지니스 기업이 확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업 확장과 다변화가 패밀리 비즈니스의 최대목적이 된다. 인도와 비즈니스를 하는 우리 기업인들이 받아보는 문서를 보면 대부분이 ‘우리는 사업다변화를 위하여…’라고 시작한다. 또한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업이나 품목을  제시하면 무엇이든 관심 있다고 하며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것처럼 대답한다. 사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 무엇이든 시도해보는 습관 때문이다.

현대 인도경제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상인 카스트 즉 비즈니스 패밀리는 종족ㆍ종교ㆍ지역을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다. 주요 상인 카스트를 지역별로 보면 인도서부 라자스탄 주에 뿌리를 둔 마르와리 상인(marwari), 자이나교를 신봉하는 제인 상인(jains), 중서부 구자라트 주의 구자라트 바니아(banias)와 보라 상인(vohras), 파키스탄 접경 펀잡주의 펀자비 힌두 카트리(khattris), 남인도 타밀나두 주의 체띠아(chettiars), 남인도 안드라쁘라데시 주의 코마티(komatis), 뭄바이 지역의 파르시(parsee) 등이 있다.

이외에도 현재는 파키스탄 영토가 된 신드 지방 출신인 신디 상인이 있는데 산업사회에서는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해버린 상인 카스트다. 현재 그들의 비즈니스는 파키스탄의 카라치, 캘커타, 뭄바이 등 일부 항구 도시에 한정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해외로 눈을 돌려 홍콩, 싱가폴, 런던, 아프리카의 일부 등지에 많이 진출해 있다. 한편 무슬림의 일파인 보라, 아메디아 상인들도 산업사회 변동에서 낙오되어 소매상으로 남아있다.
↑↑ 인도 인구는 11억 5천만명을 넘었다


 마르와리 상인 - 유통업 진출의 파트너


마르와리 상인은 현재 인도 내에서 최대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비즈니스 패밀리이다. 특히 인도 전역의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어 도ㆍ소매업 분야에 진출하려면 이들과 협력하는 것이 유망하다. 이들은 인도 서부 라자스탄 지역의 마르와르, 준주누라는 작은 도시에서 시작하여 캘커타로 세력을 펼친 다음 마침내 인도 최대 상업도시인 뭄바이 지역을 지배했다. 현재는 그들의 유통망이 인도 전역에 걸쳐 퍼져있다.
마르와리 상인은 이름을 보면 대부분 알 수 있는데 아가르왈, 오스왈, 마헤시와리, 두가르, 뽀르왈, 칸델왈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영국과 중국의 아편무역을 이용해 성장했다. 1860년부터 1940년까지 항구도시인 캘커타와 뭄바이 그리고 내륙의 공업중심지인 아메다바드와 칸뿌르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원거리까지 교역을 해야 하는 상인들은 원활한 교역활동을 위해 여러 가지 보호 장치가 필요했다. 우선 남자가 교역을 하러 먼 지역으로 장기간 출타할 경우 부인과 아이들을 보호해줄 울타리가 필요했다. 과거 우리나라의 대가족 제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여러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형태가 필수적이다. 또한 타지방에 가서 사업을 해야 하는 상인 자신들도 가는 곳마다 그들과 같은 커뮤니티에 속한 동료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보다 쉽게 장사를 할 수 있다. 이처럼 상부상조하는 제도를 마련함으로써 안심하고 상업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이다.
인도의 상인계층은 다른 카스트보다 특히 더 이러한 대가족 시스템이나 상호부조제도를 철저히 시행해 왔다. 예를 들어 마르와리가 원거리 지역에 새로 진출하면 집단주거 및 급식이 가능한 바사(basa)라는 것을 설치한다. 이는 상호부조로 설치하거나 또는 그 지역에 먼저 온 마르와리가 비용을 댄다.

이러한 바사는 그곳에 새로이 진출 하려는 같은 커뮤니티 멤버의 전초기지로서 사회 활동의 보호막이 된다. 현재 인도 최대 그룹의 하나인 비를라(Birla) 그룹의 창시자 비를라가 1860년 뭄바이에 처음 도착하였을 때 우선 정착한 곳 역시 라자스탄의 삘라니 출신 고향 사람들이 협동으로 운영하는 바사였다.
마르와리 상인의 또 하나의 성공배경으로 지목되는 것은 공동체내의 신용대출 시스템이다.

사업에 있어서 트레이딩(Trading)이란 필요할 때 대량의 현금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어야만 대형거래를 성사 시킬 수 있다. 마르와리는 같은 커뮤니티 상인끼리는 멀리서라도 전화 한 통화로 금전대차를 할 수 있으며, 한밤중에도 필요한 자금은 상호 융통해주는 대출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물론 계약서 따위는 없어도 된다. 이러한 시스템은 철저한 신용이 바탕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우선 마르와리는 같은 커뮤니티 내에서만 결혼을 하므로 모두가 친척이라는 친족의식이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인도의 카스트는 대부분 같은 카스트끼리 결혼하므로 친족의식이 마르와리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마르와리는 신용만으로 돈을 빌려주되 신용을 지키지 않는 자는 다시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행세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누구든 돈을 빌린 자는 설혹 실패하는 경우 평생을 걸려서라도 갚는 전통이 있다.

 신용을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마르와리가 인도 최대의 비즈니스 패밀리로 올라선 점은 생각해 볼 만하다. 단, 여기서 말하는 마르와리의 신용은 같은 공동체내의 신용을 말할 뿐이지 외국과의 거래에서도 반드시 신용을 지킨다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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