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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시민 의식의 가사(假死)상태,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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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시민 의식의 가사(假死)상태, 무관심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2/04/24 09:50 수정 2012.04.24 09:50



 
↑↑ 강진상 목사
평산교회
 
1964년, 뉴욕의 어떤 아파트단지에서 끔찍한 사건이 터졌다. 미세스 쥬노베즈라는 30대의 한 가정주부가 밝은 대낮에 괴한의 칼에 찔려 숨진 사건이다. 칼에 찔리면서 그녀는 비단필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사람 살려, 강도야!” 이 비명은 메아리가 되어서 아파트에 퍼져 나갔다. 그러나 현장에는 아무도 와 주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다. 그 단지에서 가까운 경찰서까지 이어지는 비상 전화가 있었는데 이 비상 전화마저도 울리지 않았다. 이 사건이 끝난 뒤에 경찰에서 조사해 보니까 그 여인이 칼에 찔려 죽는 현장을 먼발치서 직접 ‘목격한 사람’이 38명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느냐? 귀찮아서 그랬다는 것이다. 저 여자가 죽는 것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너는 너, 나는 나, 아무런 ‘줄’이 이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이 쥬노베즈 사건은 도시인들의 비정과 시민 의식의 가사(假死)상태를 말해 주는 하나의 본보기로 꼽히고 있다.

그와 유사한 사례가 있다. 198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루마니아의 작가 엘리 위젤은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였다. 그는 수상 연설에서 “학살이 진행될 때 많은 유럽인이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은 학살자의 편에 선 행위였다”라는 말로 방관의 죄를 역설한 바 있다.

유대인 대학살을 주도한 나치의 죄야 더 물을 필요도 없겠으나 그러한 만행을 방관했던 주변 국가들의 행위를 죄로 단언한 그의 발언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크든 작든 누구나 한번쯤은 ‘내가 아니라도’하는 생각으로 자신을 합리화시킨 방관자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엘리 위젤은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이 위협받을 때는 누구든지 나서야 한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일상의 소소한 방관은 그렇다 쳐도 인간의 귀중한 생명과 연관된 일에서만큼은 방관도 죄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죄라는 말을 할 때 영어로 ‘sins of commission’이라는 말과 ‘sins of omission’이라는 말로 구분한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행한 죄를 범행의 죄라 하고,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죄를 누락의 죄라 한다. 즉 방관의 죄라고 할 수 있다. 법률로 딱히 규정되어 있지는 않아도 인간의 도리에서 벗어난 행위 또한 양심상 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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