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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말라야 고소캠프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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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닭고기
고산에 와서도 먹는 것에 목숨 거는 사람이 적지 않다. 네팔의 주식은 달밧 따까리(Dalbhat tarkari)인데 녹두즙에다 쌀밥, 커리를 곁들인 채소다. 반면 인도의 주식은 지역과 종교에 따라 다르지만 40여가지가 넘는 향신료인 마살라를 넣어 만드는데 난(Naan)과 탄두리 치킨이 유명하다. 난은 밀가루로 만든 둥글고 평평하게 생긴 빵으로 인도의 전통 화덕인 탄두르에서 굽는다.
히말라야에서 가장 보편적인 육류는 닭고기다. 소고기는 종교적인 이유로 대부분 먹지를 않고, 돼지고기는 예고 없는 잦은 정전사태로 변질이 빨리 되므로 배탈이 자주 일어난다. 히말라야에서 닭을 재료로 한 ‘치킨 시즐러’와 ‘치킨 슬라이스’가 인기있는 메뉴인데,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로 가는 쿰부지역의 경우 남체바자르(3천440m)까지도 게스트하우스에 가면 고급요리로 먹을 수 있다. 네팔이나 인도에서는 모든 것을 잘 살피고 습관처럼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황당한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국물에 둥둥 떠있는 기름
영혼이 맑아지는 히말라야 트레킹이나 원정등반으로 네팔에 도착하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타멜거리에서 20여분 정도 인력자전거 릭샤를 타고 내려가면 두바르 광장 근처에 있는 아산시장이라는 재래시장이다. 곧 허물어져 내릴 것 같은 벽돌집 건물에 총총히 박혀있는 가게들과 오래된 사원 앞에 생필품부터 식료품까지 모든 것이 이곳에 다 모여있다. 재래시장치고는 굉장히 큰 규모다. 항상 오가는 인파들이 뒤엉켜 북새통을 이룬다. 그 옆에는 뉴로드라고 제법 현대화된 상점도 있지만 우리들 기준으론 별로다. 보따리상들이 밀무역으로 가져온 제품들과 물품의 대부분이 값싼 중국제품들로 장식을 하고 있다.
티베트 재래시장의 경우 그 나라의 대표 음식으로 알려져 있는 야크 버터차와 툭파(국물 국수), 짬파(보릿가루)가 있다. 먹는 순서도 있다. 야크 버터차와 툭파, 그리고 짬파 순서다. 야크 버터차는 생우유의 야릇한 날비린내가 느껴진다. 국물 위에 야크 기름이 둥둥 떠 있는 툭파를 보면 십중팔구 기겁을 하고 만다. 게다가 그 그릇에 보릿가루를 그대로 담아내온 짬파를 보면 이내 시장기가 흔적도 없이 도망쳐 버린다.
초모랑마(8천850m) 등반 때 있었던 일이다. 네팔사람들하고도 가끔 텐트생활을 함께 해보면 냄새가 고약하구나 했는데, 티벳 짐꾼과 전진캠프로 올라가다가 폭설을 만나 창체라고 하는 지역에서 갇히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티벳 현지인과 함께 텐트에 들어갔는데 고약한 냄새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살기 위해 억지로 먹었던 음식마저 소화기능이 마비되었는지 모든 것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히말라야 밥상은 나를 섬기듯이 챙겨주는 마일라가 있었기에 힘들어도 외롭지는 않았다.
허기진 차에 양고기 날것인들
고소적응등반을 마치고 휴식을 가진 뒤 정상도전에 나서던 날 7천600m 고소캠프에서 텐트를 뒤흔드는 돌풍과 폭설로 텐트 플라이가 사정없이 찢어지고, 등반 자체가 어려웠다. 기상악화로 등반이 불투명해지고 망설여진다. 등반 중 몇 명이 죽었다는 비보도 접하고 보니 이번에도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별생각이 다 들었다. 앙밍마 셀파와 한국에서 가져간 라면으로 점심을 떼우고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고 늦은 출발을 했다.
과연 세계 최고봉을 오를 수 있을까? 6시간 넘게 고소등반을 한 후 오후 7시쯤, 피로에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8천300m 마지막 캠프에 도착했다. 오전보다는 날씨가 많이 좋아졌다. 그런데 바로 옆 텐트 앞에 삼중화를 신은 채로 잠을 자는 듯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체코에서 온 산악인이 정상을 오르다 체력저하로 등반을 포기하고 휴식을 취하던 중 죽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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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트만두 두바르광장에 있는 안산자바르(재래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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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고독한 히말라야의 현장이다. 나는 경사면에 돔텐트 한 동을 힘들게 설치하고 안으로 들어가 비좁은 공간에서 비스듬히 누운 채 출발에 앞서 장비를 확인하고 셀파가 만들어주는 간식과 따뜻한 물을 얻어 마셨다. 얼마 후 네팔인 앙밍마 셰르파가 우리 텐트 안으로 들어와서는 비닐봉지를 풀었다. 털이 달라붙은 생고기인 피멍이 들어있는 양고기 다리 한쪽이었다. 보통 때 같으면 냄새 때문에 먹을 수 없는 고기지만 여기선 먹을 수밖에 없다. 나도 에너지 보충을 위하여 좀 달라고 했더니 밍마 셰르파는 “미스터 리, 먹을 수 있겠느냐?”며 물었다. 나는 염치 불구하고 한 입 먹었지만 아무런 양념도 없이 그냥 날 것으로 된 양고기를 뜯어 먹는다는 것은, 극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경험할 수 없다. 요즈음 말하는 퓨전푸드(fusion food, 다양한 음식재료와 조리방법이 혼합된 요리)도 아니요, 소올푸드(soul food, 영혼을 살찌우는 구수하고 깊은 맛 요리)도 아니다. 그래도 나는 애써 “데레이 미또차(대단히 맛있다)”라고 연발하면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아니 짐승처럼 집어 삼켰다. 그거라도 못 얻어 먹었다면 에너지 고갈 상태로 정상 등정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쿡이 내놓는 음식 받아들여야
네팔에서 먹을 만한 식사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달 바트라고 하는 정통식과 짜파티, 야크 스테이크, 핑그 칩셔(감자튀김), 초우면(튀김국수), 죽 종류의 포리치, 모모(만두), 볶음밥, 샥파(수제비), 치킨슬라이스, 삶은 계란과 삶은 감자 등이다.
우리나라 등반대의 경우 반드시 챙겨오는 음식이 누룽지, 떡국, 라면, 고추장, 된장 그리고 김치다. 등반은 무게와의 싸움이다. 식량의 무게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요즈음은 고추장, 된장만 가지고 가면 웬만한 건 현지조달이 가능하다. 해발 5천미터 이상 되는 고지대에서 고추장에 말아먹는 비빔밥은 가히 일품이다. 또 롯지 트레킹 때 도착하자마자 마늘 수프를 먹어두면 고소 적응에 매우 효과적이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서 운무가 걷히지 않은 설산을 올려다 보며 홍차를 한 잔 할 수 있다면 그동안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히말라야에 가면, 짐꾼이라고 부르는 꿀리가 텐트나 생활에 필요한 것을 운반해주고, 세르파와 쿡이 식사 준비를 한다. 조리를 책임지는 이를 ‘쿡’이라 부르고 설거지하는 사람을, ‘키친보이’라고 부른다. 원정대의 이 모든것의 총책임을 맡은 사람을 사다(우두머리)라 부른다.
식사시간이 되면 쿡의 손길이 바쁘게 움직인다. ‘신의 영역’인 히말라야에 오르는 이들은 쿡이 준비한 음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혹한과 고소에 적응은 커녕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일 만한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깐깐한 음식 취향은 그 사람이 가진 사고 체계를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물론 체질에 따라, 집안 내력에 따라 취향이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음식을 가리는 상당한 이유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까. 음식에 대한 유연성이 사고의 유연성을 뜻한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억설일지는 몰라도 가치판단의 대부분이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음식에 대한 호감이나 저항 의식도 입이 아니라 머리의 명령에 따른다는 사실은 자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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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지 식당에서 식사중인 등반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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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에 있는 모모만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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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잘 먹고 잘 배설해 내는 게 건강에도 좋고 사고에도 좋다.
히말라야의 산에서 먹는 음식은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 되기 마련이다. <가난한 날의 행복>에서와 같이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행복감에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것은 어찌 김소운 뿐이랴. 요즈음 식품의 키워드는 스마트푸드(smart food) 다. 두뇌활동에 좋은 음식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지금은 몸에 좋은 음식이라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