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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 한줄의 노트] 봄날
사회

[시 한줄의 노트] 봄날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2/05/15 11:01 수정 2012.05.15 11:06



나는 조간신문 정치면, 문화면을 뒤지며 타박하고

아내는 덤으로 끼워온 전단지를 보고 하루를 설계한다.

때 묻는 시집이 쥐어져 있던 손에는

색색의 화려한 차림표가 거품처럼 놓인다.

커피 할인, 휴지 염가 판매, 100원 할인 쿠폰 세트

개업 기념 특별할인, 차별화된 맛 가격 인하

하루에 수십 장씩 도착하는 전단지에

눈길 한 번 안 주던 아가씨가 오늘은 무엇이 싸고

오늘은 어느 음식점이 싸다는 아줌마 타령이다

한 번을 사더라도 오래 입을 수 있는

이름 있는 것을 사라고 성화를 부리면서도

황금 잉어빵을 나란히 든 우리는

어느 가게에 세일 종이쪽이 나 붙은 곳으로

어느새 망설임을 자주 던져 보는 것이다.

생강나무 꽃이 노랗게 피는 날

육거리 시장에서 싸고 좋은 옷을 샀다면서

이쁘냐는 물음도 잊지 않는 아내

꽃무늬 잠옷을 사주고 싶은 봄날

나는 가만 작아진 어깨를 쓰다듬어 본다.






이원익 시인
2004년 제9회 <충북작가> 신인상, 엽서시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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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이 시는 서민의 일상적 단면을 통해 ‘지금-여기’ 우리의 현실을 환기시켜 주는군요. 시의 화자인 <나>가 <조간신문>을 읽고 <타박>한 것은 아마도 치솟는 물가(物價)에 대한 정치인들의 공약(空約)과 감각적ㆍ기호적 가치를 부추키는 자본주의 문화일 것 같은데요,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사회의 우울한 이면을 들여다보는 심경이 꽤나 복잡했을 것 같군요. 아내 또한 그런 남편의 마음을 잘 알기에 전단지를 보며 <한 번을 사더라도 오래 입을 수 있는/ 이름 있는 것을 사라고 성화를 부리면서도/ 황금 잉어빵>에 만족하는 거겠지요.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봄날>, <싸고 좋은 옷을 샀다면서/ 이쁘냐는 물음>을 던지는 아내에게 <꽃무늬 잠옷을 사주>지도 못하고, <작아진 어깨를 쓰다듬>고 있는 <나>의 모습에서 가장의 쓸쓸한 심정과 부부간의 애틋한 정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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