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인은 어떻게 협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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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델리 모터쇼, 아시안 게임이 열렸던 프라가티 마이단에서 열린 모터쇼를 찾아 현대차 전시를 둘러보고 있는 관람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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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외대 인도어과 한국외대 지역대학원 정치학 석사 인도 첸나이 무역 한국인도학회 부회장 영산대학학교 인도연구소 . 영산대 인도비지니스학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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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은 몇 년 후에 어떤 제품을 수입하거나 그 사업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계획이 있는 경우 마치 지금 그 사업을 하려는 것처럼 수입의사를 밝히고 구체적인 협상을 진행한다. 즉, 제품의 가격, 시장동향 등의 정보만 입수하고 끝낼 것이면서도 샘플을 요구하고 인도까지 출장을 오게 만든다. 남의 시간이나 비용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인도와 비즈니스 거래가 협상만 요란할 뿐 결과가 안 나오는 주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입찰서류로 기술과 정보만 입수하고 입찰계획 자체를 없애기도 한다. 인도 비즈니스맨의 악명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인도인은 협상할 때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상황이 불리하면 상황이 유리해질 때까지 참고 기다린다. 가격을 내리기 위해서 오랫동안 시간을 끌기도 한다. 시간을 끌면서 다른 경쟁사의 제품을 찾아 우리를 압박한다. 우리쪽 동종 업체간에 경쟁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빨리 실적을 올리려는 우리측과 시간을 물 쓰듯 하는 인도인과의 협상은 시작부터 게임이 되지 않는다. 인도 국영기업의 선박입찰, 플랜트 수주 등에서 우리나라 대기업들 간 출혈경쟁이 대표적인 피해사례다. 값을 후려치기 위해 한 번 입찰을 보아 가격을 오픈한 후 다시 입찰을 부치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는 인도는 비즈니스맨이나 공무원이나 똑같다.
인도인들은 뛰어난 기억력으로 협상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전개해 나간다. 우리가 식사하면서 또는 술을 한잔하면서 주고받은 이야기 중 자기에게 유리한 것을 나중에 협상에 이용하는 재주가 탁월하다. 또한 관련분야 지식도 상당한 수준에 있다. 따라서 협상에 나서는 우리 측은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손쉽게 약속을 해서도 안 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어떤 작은 것도 약속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자신의 심리적 장애부터 극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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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인도 패션업계 3위 업체 무드라를 인수하고 인도내수시장에 진출한 이랜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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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은 문서를 좋아하고 편지 쓰기를 즐긴다. 따라서 인도인과의 거래는 대부분 인도측으로부터 들어온 문서로 시작된다. 몇 차례에 걸친 교신 후 상호방문 등으로 본격적인 교섭이 시작된다. 여기서는 문서내용, 법규 등 기술적인 부분보다 협상 초기단계의 심리적 장애(부담감)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리측이 처음부터 커다란 손해를 자초하고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심리적 장애’ 부분을 주로 설명하고자 한다.
우선 우리 기업인이 인도를 방문하여 공항에 내리면 얼굴도 모르던 인도 파트너가 매우 다정한 사이처럼 친근하게 다가오면서 꽃다발이나 목걸이(Rose Wood를 대팻밥처럼 얇게 깎아 만든)를 걸어주며 반갑게 맞이한다. 공항 밖을 나가면 운전사를 대동한 차가 대기하고 우리측을 상석에 앉힌 후 호텔로 향한다. 그동안 인도인은 쉴 사이 없이 영어로 이야기하면서 주변경치, 정치, 종교 등 온갖 주제를 다 동원하여 우리측에게는 “good, wonder-ful, thank you”라는 말 외에는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호텔에서도 체크인부터 방까지 거의 모든 점을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 써준다. 저녁에 집에 초대하면 온 가족이 함께 맞이하면서 증손자까지 일일이 소개하면서 친근함을 표시하고 인도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자기가 해결해 줄 터이니 아무 걱정 말라고 수다를 떤다. 식사는 수 십 가지의 음식을 내오고 12시가 넘어도 쉽게 끝나지 않는다. 식사 후 호텔로 갈 때는 자기 승용차에 운전사를 붙여 대기시키고 인도를 떠날 때까지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하면서 운전사에게는 각종 세세한 내용까지 직접 지시한다. 호텔이 아니고 인도기업인의 Farm House에 묵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전용차, 전용운전사, 전용하우스보이, 경비원, 요리사까지 준비시키고 아침에는 안부전화까지 온다.
이때부터 우리 기업인의 ‘심리적 장애’가 시작된다. 한국에서는 어느 누구한테도 이러한 대접을 받아 본 경험이 없는 우리 기업인은 대기하고 있는 하인들에게도 무언가 미안하고 자기 하나 때문에 이들이 밤새 고생했다는 생각과 한편으로는 으쓱한 기분으로 팁을 과하게 주기도 한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전용차로 인도 파트너를 만나러 가면 어제 불편한 것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우리측은 “Thank you very much”라는 말만 되풀이하게 된다.
상상도 못할 칙사 대접을 받은 우리 측은 이 정도의 성의 있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쉽게 판단해 버린다. 그리고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보답할 것인지를 우선 생각한다. 이때부터 교섭내용 중 이러이러한 사항은 별로 중요한 사항이 아니니 내가 양보해주지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본래의 목적인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사소한 것은 웬만하면 양보해 주겠다는 심리적 장애 상태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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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델리공항 면세점에서 인도 전통상품을 판매하는 코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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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알면 이런 심리적 부담은 가질 필요가 없다. 우선 인도 측의 융숭한 대접은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해라. 전용차, 운전사, 경비원, 요리사 등을 인도 체재기간 동안 전부 사용한다 해도 인건비가 싼 인도에서는 하루에 일, 이만 원 정도에 지나지 않으므로 너무 황공해 할 필요가 없다. 카스트라는 사회제도 하에서는 이러한 대접은 아주 당연한 것이며 이러한 대접이 없다면 오히려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측이 필요 없는 존재라고 판단하면 단 1루피도 쓰지 않는 것이 인도인이다.
‘염치’라고 하는
한국적 사고방식을 버려라
합작투자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 합작투자라고 하면 교섭할 내용이 적어도 일 백여 가지는 나올 것이다. 그러면 우리 측은 영어실력이 부족하므로 계약서 초안을 인도 측에 부탁한다. 인도측이 만든 초안을 차분히 검토해 보면 한국인이면 누구나 이것은 계약서가 아니고 일방적인 요구서라고 느끼게 된다. 초안을 만들기 전에 구두로 약속한 사항까지도 일방적으로 인도 측에 유리하게 뒤집어 놓을 뿐만 아니라 상식적으로 보아 당연히 인도 측이 부담할 사항들도 거의 100% 한국 측에 부담을 지워 놓는다. 초안을 만들기 전에 타협한 내용은 하나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계약서 초안을 놓고 교섭이 시작되면 우리측은 크게 마음을 먹고 첫째 조항부터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인도측이 부담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게 된다. 그러면 인도측은 큰 양보를 해주듯이 우리 지적을 받아들인다. 조항 하나하나를 지적하면서 매번 인도측이 양보하라고 하다 보면 한국식 사고방식이 고개를 들게 된다. 예를 들어 100가지가 모두 인도측 부담이어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여기서 30여 가지를 인도측에 넘기고 나면 우리가 너무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우리 기업인은 갖게 된다.
그 후부터는 큰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당연히 인도측 부담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측이 이를 부담하게 된다. 즉, 염치가 있어야 한다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이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당초 계약서 초안 자체가 ‘몰염치’하게 작성되었다는 것은 협상 중에 이미 잊어버리고 ‘염치’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적 사고방식이 적용되는 순간부터 우리측의 손해가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