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같이 살아야 할 가족이기에 살아온 것밖엔…”..
사람

“같이 살아야 할 가족이기에 살아온 것밖엔…”

노미란 기자 yes_miran@ysnews.co.kr 입력 2012/05/22 10:08 수정 2012.05.22 10:09
40여년 간 장애인 시숙 봉양해온 서종점 씨

가정의 달 맞아 효행 모범 사례로 도지사 표창




“한 것도 별로 없는데, 해줄 얘기도 없는데, 신문에 나간다꼬요? 부끄럽구로…”

지적장애 2급인 시숙 김경동(74) 씨를 40여년 간 보살펴 온 효행으로 지난 8일 경남도지사 표창을 받은 서종점(65, 삼호동) 씨. 서 씨는 취재 요청에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인데 왜 기삿거리가 되는지 이해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이 등돌리고 형제자매가 재산 다투는 뉴스가 도배되는 사회에서 서 씨가 시숙과 함께 걸어온 세월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서 씨는 스물넷에 김 씨 집안으로 시집왔다. 중매 결혼을 한 터라 처음엔 시숙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누군 줄도 몰랐지. 이런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고. 시집 와서 누구냐 물어보니 우리 영감 행님이라카대. 시숙이 5살 때 갑자기 열이 났는데, 그때 열이 뇌로 가서 장애가 생긴 모양이더라. 내가 제순지 누군지도 모르고 ‘신랑, 신랑’ 그라더라고”

서 씨는 결혼하자마자 정신 연령이 5세에 불과한 시숙을 시어머니와 함께 40여년 동안 돌봤다.

그러다 27년 전 남편이, 16년 전엔 시어머니가 세상을 뜨면서 시숙을 돌보는 것은 오롯이 서 씨의 몫이 됐다.

그때부터 서 씨는 더욱 시숙 뒷바라지에 집중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고 파출부로 일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갔다. 요즘은 공공일자리사업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시어머니까지 돌아가시고 난 뒤로 주위 사람이 더 안 좋게 볼까봐서 얼마나 신경 썼는데. 속옷, 겉옷 할 것 없이 얄궂은 옷들은 다 버리고 깔끔하게 해서 입히고, 할배가 외출하고 돌아오면 바로 씻기고 했다카이”

이처럼 오랜 세월 서 씨와 함께 생활한 덕에 시숙에게 서 씨는 ‘엄마’ 같은 존재다. 다른 가족들은 안 따라도 서 씨의 말은 곧잘 따른다. 가끔 시숙이 먼저 “내 이거 묵을까”, “내 이거 할까”라며 묻기도 하고 서 씨가 하지 말라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이런 서 씨의 모습은 슬하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어렸을 때부터 큰할아버지와 어울렸던 큰손녀는 행인이 할아버지를 해코지라도 할라 치면 냉큼 달려가 “그런 사람한테 왜 그러냐, 당신 집에는 그런 사람 없으라는 법 있냐”며 혼내줄 정도다.

이처럼 시숙이 별다른 사고 없이 시숙과 일생을 함께 한 서 씨에게는 소원이 하나 있다. 남은 생을 시숙이 먼저 마무리하는 것이다. 혹여나 몸이 불편한 시숙을 혼자 두고 먼저 본인이 세상을 떠나면 돌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떠나면 우야겠노. 시설로 가야제. 딸내미랑 사위 보고 돌봐라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가. 다들 바쁜 세상, 맞벌이 하는 세상에 어느 누가 빨래해주고 씻기고 재우겠나”

시숙이 시설에 들어간다 해도 서 씨의 걱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숙의 성격상 그 사람들과 적응을 못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 씨는 절에 가서 기도한다. 나보다 먼저 시숙을 데려 가라고. 큰 고통, 큰 사고 없이 편안하게 자는 자리에 갔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시숙 돌보느라 젊은 세월을 보낸 서 씨에게 최근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등돌리는 가족’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나도 옛날에 동네 사람들이 ‘시설 보내라, 말라꼬 니 혼자 고생하노’ 얘기 많이 들었지. 하지만 형제 간인데, 우리 가족인데, 데리고 있어야지. 피를 나눈 가족이, 지를 낳아준 부모 지가 낳은 자식인데 버리고 가는 걸 보면 우째 저랄꼬 싶으지. 장애인이라서 어데 맡기는 것도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 마음이 딱하기도 하고… 힘들다는 걸 아니까…”

같이 살아야 할 가족이기에 살아온 것밖에 없다는 서 씨. 이제는 돌보기에 힘에 부치지 않냐는 질문에 “내가 이 세상에서 안고 가야 하는 운명인데 뭐. 지금처럼 그대로 살아야지”라 말하며 미소를 지어보여였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