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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초대 수필] 현충일, 그 유월의 아픔..
기획/특집

[초대 수필] 현충일, 그 유월의 아픔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2/05/29 11:01 수정 2012.05.29 11:01




 
↑↑ 정영숙
수필가
한국문인협회양산지부 사무차장
 
푸른 잎사귀마다 윤기가 도는 이른 아침. 현충일 추념식 행사에 참석하고자 녹음이 우거진 춘추공원의 숲길을 오른다. 공원의 숲은 맑고 청아한 산새의 노래로 깨어나고, 바람에 일렁이는 초록 향기는 싱그러운 아침을 준비한다. 서로 부둥켜안은 듯 기대어 서 있는 소나무 잔가지에 내리는 햇살, 춘추공원의 유월은 신록의 향연이 한창이다.   

춘추공원의 현충탑까지 오르려면 두 갈래의 길이 있다. 보훈 가족의 염원을 담아 건립된 직선의 계단 길과 숲속으로부터 이어지는 숲길이 있다. 숲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보면 소나무 아래 오롯이 피어 길섶을 수놓은 마작줄기꽃이며 갖가지 들꽃에게서 푸릇푸릇 번져가는 초록의 숨소리를 엿듣게 된다. 현충탑으로 가는 길은 숲에서 숲으로 번져가는 수채화 같은 길이다.   

아직 이른 시각이지만 추념식장으로 가는 참배객들로 숲길은 조금씩 소란스럽다. 참배객들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6.25전쟁으로 인해 사랑하는 혈육을 잃어버린 유가족들과 전장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평생 고통 받는 상이군경들이다. 그들의 모습은 안쓰럽기만 하다. 다리를 절거나, 한 쪽 팔이 없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 역사의 아픈 흔적이다.

해마다 추념식에 참석하다보니 낯익은 한 분의 모습이 보인다. 작은 체구에 하얗게 센 머리카락과 주름진 얼굴의 할아버지. 올해도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서 당당하게 숲길을 달리듯 오르신다. 하얀 소복 차림의 등 굽은 할머니도 지팡이에 의지하고 가족들의 보호를 받으며 쉬엄쉬엄 숲길을 오른다. 나무 그늘 아래서 자원봉사자들이 건네는 생수 한 병이 참 시원하다.   

참배객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현충탑을 향해 걷다보니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숲길의 중간쯤에서 나무에 기대 잠시 쉬고 계신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가슴에 단 훈장이 빛난다. 인자한 모습도 여전하시다. 잠깐 눈인사를 한다. 아버지를 닮으셨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주름진 얼굴에 눈빛이 참 다감하시다. 할아버지를 뵈니 불현듯 잊고 있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6.25전쟁에 참전한 참전용사셨다. 위태로운 조국의 부름을 받고 젊음을 기꺼이 던졌던 아버지. 그러나 전쟁이 쓸고 간 아버지의 몸은 총탄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총알이 관통한 허벅지의 상처는 보기만 해도 흉물스러웠다. 그 총탄의 상처는 오랫동안 아버지를 괴롭혔다.

어린 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아버지의 모습은 흐릿한 풍경으로 되살아난다. 아버지의 머리맡에는 늘 큼지막한 종이상자가 놓여있었다. 그 종이상자에는 몇 개의 훈장과 빛바랜 사진첩이 들어 있었다. 그것이 아버지가 가진 유일한 애장품이었다. 그 애장품은 술을 드신 날이면 가족에게 펼쳐 보여주셨다. 사진첩 속의 아버지는 젊고 멋진 군인 장교셨다. 아버지는 말 수가 적으신 편이셨다. 그러나 기분 좋은 술로 거나해지시면 아버지는 전쟁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치열했던 최전방에서의 실화를 증언 하시던 아버지의 이야기는 늦은 밤까지 계속 되기도 했다.

아버지는 향토예비군이 창설되면서 지역의 예비군 중대장으로 복귀하셨다. 예비군복에 군화를 신고 방위병을 앞세우며 신작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나의 눈에 씩씩한 군인아저씨 같았다.
 
이웃들은 우리 집을 중대장집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아버지는 농사일은 서투셨다. 오랜 군 생활을 하셨기 때문인지 밭갈이도, 논갈이도 직접 하지 않고 일꾼에게 맡겼다. 논에 모를 낼 때도 아버지는 못줄을 잡기만 하시고 물 논에 발 담그기를 꺼려하셨다. 이웃들은 아버지를 어중재비 농사꾼이라며 대놓고 농을 했다. 이웃들의 빈정거림에도 아버지는 빙그레 웃기만 할 뿐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아버지의 발뒤꿈치에도 총알이 스치고 간 흔적이 있었다는 것을….

세월이 흐르면서 아버지의 상처는 점점 곪기 시작했다. 총탄이 제거된 다리의 발이 서서히 썩는 병이었다. 치료를 서둘렀지만 아버지는 결국 발목을 절단하고 휠체어에 의지한 채 몇 해를 더 사시다 돌아 가셨다. 
   
고단한 삶을 살아온 아버지를 떠올리는 풍경에서 나의 머릿속에 머무는 또렷한 기억이 있다. 유년의 나는 해 질 무렵 마루에 앉아 책 읽기를 좋아했다. 가끔은 오빠들이 빌려둔 만화책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몰랐다. 해 질 무렵 마루에 앉아 책을 보고 있으면 아버지는 잊지 않고 “얘야 석양빛에 책을 읽으면 눈이 나빠져”라고 늘 말씀 하셨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차분해지는 해질 무렵의 그 시간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거의 매일 타이르는 아버지의 조용한 목소리. 하지만 나는 그 잔소리가 듣기 싫어 방으로 들어가 방바닥에 엎드려 사방이 어두컴컴해질 때까지 책을 읽기도 했다. 혹시 아버지가 찾을까봐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면 붉게 물들어 가는 노을 속에 아버지의 뒷모습만 보였다.

후일 그 타이름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은 나는 육 남매 중 혼자만 도수 높은 안경을 끼게 되는 불편을 안게 되었다. 해질녘 조용히 나의 잘못된 자세를 타이르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진한 그리움과 아픔으로 남아있다.

유월은 아픔이 도지는 계절이다.

숲 그늘을 벗어나자 우뚝 선 현충탑이 참배객을 맞이한다. 유가족과 참배객들은 높은 길을 올라오느라 힘들었는지 땀을 훔치며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서로 위로의 말을 건넨다. 소나무 향이 진하게 퍼져간다.

현충탑 아래 봉안각의 문이 열렸다. 춘추공원 현충탑 봉안각에는 769위의 호국영령들이 안장되어 있다. 현충일 아침이면 굳게 닫혀있던 이 문이 열리고 유가족의 슬픈 상봉이 시작된다.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목숨 바친 애국선열과 전몰장병들이 잠든 봉안각은 고요한 적막감이 흐른다. 소복을 입은 미망인 할머니는 그리운 이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 죽여 흐느낀다. 삶에 지친 할머니의 서러운 눈물은 강이 되어 봉안각을 적신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이 일어난 유월은 잔인한 달이다. 나라의 부름 받고 살아서 꼭 돌아오리라 떠난 사랑하는 이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한 채 산화되어 이 강산에 흩뿌려졌다. 생사를 알 수 없는 국군포로, 침상에서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상이용사들의 삶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아픔이다.

10시 정각.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올린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전장에서 사라진 젊은 영혼들의 울부짖음이 가슴을 후비는 것 같다. 조총수는 21발의 조포를 푸른 유월의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린다. 잠시 산새의 지저귐도 없는 정적만이 추념식장을 휘감고 돈다.

추념식 제단에는 하얀 국화꽃이 가지런히 놓이고, 고귀한 희생으로 지켜낸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추념사는 참석한 모두의 가슴을 조용히 어루만진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생사조차 알 수 없어 그리움으로 멍든 유가족을 위로 하고자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리움의 헌시를 바친다.

푸르른 녹음이 뒤덮인 산하가 젊은이의 핏자국으로 얼룩져 상처와 아픔으로 가득했던 그 해의 유월, 고귀한 젊음을 조국에 바치고 장렬히 산화하며 포연 속에 잠들어야 했던 아름다운 당신들의 숭고한 희생을 결코 잊지 않으며, 이렇게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바람이 따스한 온기를 품은 날, 불꽃같은 젊음을 바쳐 지켜낸 이 평화의 뜰에 모여 우린 늘 당신들의 고귀한 이름을 부르며 오래토록 당신들을 기억하며 항상 그리워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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