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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상 목사 평산교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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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늘 불평을 늘어놓았다. 구급차를 운전하다 보니 무척 피곤하고 힘든 것이다. 한밤중이나, 새벽에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출동해 환자들을 실어 나르니 얼마 힘들겠는가? 응급환자들, 피투성이 된 사람,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 심지어 실려 가는 도중에 차 안에서 죽는 사람, 주로 이런 사람들을 매일같이 실어 나르니 너무 힘들고 짜증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불평하고, 짜증을 내며, 신세를 한탄하며 살았다.
그런데 하루는 호흡을 가쁘게 몰아쉬는 할머니를 태워 급하게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할머니를 내려 주고 돌아서려고 하는데, 할머니가 이 운전기사를 불렀다. “이봐, 젊은이”, “저를 부르시는 겁니까?”, “그렇소. 한 가지 당신에게 물어보겠소. 건강한 몸을 가졌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 본 일이 있소?” 운전기사는 깜짝 놀라며, 부끄러워졌다. 지난 10년 동안 병원에서 구급차를 운전하면서 단 한 번도 건강한 몸에 감사해 본 일이 없음을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서양격언에 “제일 가르치기 어려운 수학문제는 우리가 받은 축복을 세어보는 문제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사람들이 감사치 않을 뿐만 아니라, 감사를 가르치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회학자 스탠디는 “요즘 시대는 암보다 더 무서운 질병을 앓고 있는데, 그것은 감사상실증이다”고 말했다.
우리의 삶이 더 행복해지고, 더 풍성한 축복을 누리기 원한다면, 어떤 일이든지,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인생이 행복해지고 더 풍성해지지만, 불평하고 원망하며 사는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만족이 없고 불행해지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 터키 지역을 성지 순례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로마의 박해를 피하여 초기 기독교인들이 갑바도기아 괴뢰메 골짜기의 암석교회와 350년 숨어 지냈던 지하교회 데린구유를 다녀왔다. 그들끼리 만날 때마다 나누었던 그들 특유의 작별인사가 있었다. 두 사람이 만났을 때든지, 열 사람이 만났을 때든지, 아니면 교회 안에서 모두가 함께 만났을 때에 그들은 뜨거운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서로 위로했다. 그다음 헤어지면서 그들은 ‘데오 그라티아스!’라고 속삭였다. 이 말은 라틴어인데 ‘하나님께 감사합시다!’라는 뜻이다. 감사가 있었기에 혹독한 고난을 이겨 낼 수가 있었다. 고난 속에서도 감사가 축복을 여는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