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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병호 남강역리연구원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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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발한 진달래꽃이 꽃방석이 되어 산천을 화려하게 수놓던 지난 봄날 오후, 상담실에 특별한 내방객이 있었다. “제 사주에 절집 인연이 약하다면 이제라도 백팔 염주를 내려놓고 싶어요” 40대 초반의 비구니로부터 뜻밖의 하소연이다. 꽃 같은 시절을 다 보내고 지금에야 환속을 생각하다니 전후 사정을 떠나 참 딱한 일이다.
본인의 사주가 태왕하면 재관(財官)이 허약해진다. 재는 처요, 관은 자녀인데 재관이 약해 의지할 곳이 없으면 처자와 인연이 멀게 된다. 특히 수기가 왕하여 한랭한 사주나 반대로 화기가 극심해 조열한 운명에 화개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면 결국 속세와 처자를 떠나 출가하게 된다. 성철 스님의 사주가 바로 수기가 태왕하고 재관이 약한 경우이다.
진, 술, 축, 미가 지지에 있으면 대개 화개살로 본다. 고서(古書)는 “화개지명은 문학, 예술, 종교, 학문에 뜻을 두고 성직자나 대학자가 되지만 고독하고 외로운 살(殺)이다. 대인위귀. 소인위천이라, 대인은 승려로 극귀하게 되고 소인은 음주, 호색으로 타락과 방탕한 삶을 보내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최근 조계종단 고위 승려들의 억대 도박 사건이 성 매수 사건으로 발전하고, 심지어 내연의 처자 이야기로 번지고 있다. 차마 부끄러워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이 청정하다고 믿었던 승단으로부터 나오고 있는 것이다. 향기로운 꽃방석이 되어 중생을 위해 헌신해야 할 승려들이 너도나도 타락의 꽃방석 위에 앉아 여색과 돈에 맛 들인 구린 입으로 법문하려는 모습이다. 비단 조계종단뿐이랴. 작금에 이르러 종교계는 사이비만 판을 치고 성철 스님 같은 고승대덕의 선지식은 아득하다.
그래도 한 점 기대는 바는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음력 사월 보름, 이천여명의 수좌승들이 전국의 선방에서 청산(靑山)과 백운(白雲)이라는 패찰을 걸고 하안거 정진에 들어갔다. 청산이라는 패 앞에는 그 절의 붙박이 스님들이, 백운이라는 패 앞에는 나그네 수행자들이 묵언정진 한다. 청산은 본시 말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백운은 흔적 없이 왔다가 사라지니 누가 붙였든 간에 미상불 절묘한 표현이다.
나그네 수행자들을 달리 운수납자라 부른다. 안거가 끝나면 걸망 하나만 어깨에 둘러메고 선방을 나서 구름처럼 물처럼 흐르니 일러 운수납자이다. 이들에게 해제는 정처 없는 만행을 통해 “본래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의 기왓장을 사무치는 마음으로 끝없이 갈고 닦는 새로운 결제의 시작일 뿐이다.
진정한 승려는 사주팔자에 얽매이지 않는다. 자신의 무명과 업을 단칼에 자르고자 삭발, 출가하는 이들에게 사주가 무슨 의미 있으랴. 깊은 산의 매화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 향기는 계곡 아래로 흘러 퍼지는 법. 앞으로 석 달 후, 옥잠화가 필 무렵 납자들의 하안거도 끝날 것이다. 해탈 꽃이라고 불리는 이 꽃이 필 때, 하안거를 끝내고 세상에 나서는 스님 중 부디 성철 스님같은 고승대덕도 많이 피어나길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