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황명훈 웅상고등학교 교사 | ||
ⓒ |
많은 사람이 입을 모아 다시금 20대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다고 얘기들을 하지만 글쎄, 나는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다. 그것은 어쩌면, 고난과 상처로 점철된 그 어두운 시간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무엇하나 제대로 용기 있게 시도해보지 못한 아쉬움과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나의 못난 속내 때문인지도 모른다.
암흑의 끝은 20대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스물여덟 살의 12월. 그즈음에도 나는 여전히 방황 중이었고(대학을 졸업했음에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그런 수동적인 시간이 지칠 줄도 모르고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운명처럼(그렇다! 나는 이것을 운명이라 믿는다) 한 여자를 만났고, 사랑에 빠졌으며, 어느새 스물아홉 살이 되어 있었다. 그 당시 세상은 온통 핑크빛이었지만, 그 빛깔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래, 마냥 사랑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법. 무언가를 해야 했다. 결혼을 해야 했고, 가정을 꾸려야 했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직장을 가져야 했다.
서른 살, 늦은 나이에 나는 다시 교육대학원에 진학했고, 서른두 살에 교사자격증을 땄으며, 서른네 살에 그렇게도 원했던 임용시험에 합격했다. 드디어 당당하게 교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교사라는 직업이 장난이 아니다. 내 적성에 딱 맞다.(나랑 너무 잘 맞아서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 아이들. 나는 교사가 되기 전에는 내가 아이들을 이렇게 좋아하는지 미처 몰랐었다. 사회에서 우리가 숱하게 접하는 ‘어른’들의 냄새가 풍기지 않는 그런 때 묻지 않은 순박함이 나를 매료시켰다. 요즘 언론에서는 청소년들의 각종 비행에 대해서 연일 보도를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다. 그들의 어떤 죄악도 우리 어른들의 수준(?)에는 못 미친다고 나는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묘한 나이대의 고등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생활한다는 것은 보통사람들은 누릴 수 없는 호사가 아닌가!
매번 수업시간마다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기대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때로는 힘이 빠지고 회의에 젖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학교가 좋다, 하하. 학교 밴드부를 맡으면서 학생들과 같이 연습하고, 동료 교사들의 결혼식 축가 무대에서 멋지게 연주하고, 여름이면 오전 보충수업을 마치고 반 아이들과 가까운 계곡에서 물놀이하고, 또 뭐가 있던가? 아, 그래, 작년 여름방학 때처럼 마음에 맞는 몇몇 아이들과 함께 제주도 자전거 여행도 떠나고! 어디 그뿐인가? 체육대회에서 4인 5각 경기를 하다가 함께 넘어지기도 하고, 합창대회에서 1등 상을 받는 기쁨을 누리고, 함께 밤늦게까지 남아 축제 준비를 하고….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하하하하.
입시를 준비하는 고3학생들 일부만이 교실을 지키고 있는 한적한 토요일 오전, 나 홀로 교무실에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직장인에게는 황금같이 소중한 주말에 일터로 나오는 것이 끔찍해야 당연하겠지만 나는 전혀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다. 하하, 여긴 바로 학교가 아닌가,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그리고 이 짧은 주말이 지나가고 나면 어김없이 다가오는 월요일 아침 때문에 많은 직장인이 인상을 찌푸리겠지만, 하하 나는 어쩌나, 이 다가오는 월요일 아침이 두근두근 기다려지는 것을! 오, 즐거운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