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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화요살롱] 논어와 주판
오피니언

[화요살롱] 논어와 주판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2/06/19 10:32 수정 2012.06.19 10:32



 
↑↑ 영산대학교 동양문화연구원장
 
공자(孔子)가 2600여년 전의 인물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논어가 공자의 생각과 말을 기록한 고전임을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공자의 생각과 논어의 참 뜻을 제대로 알고 실천하고 있는 사람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공자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었으나 당시의 학문을 유학(儒學)으로 집대성하여 자신의 이상을 현실세계에 구현하고자 한 일생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공자의 언행은 제자들에 의하여 논어(論語)라는 책으로 만들어져 아직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서양의 철학사는 플라톤의 주석에 불과하다고 하는 말도 있지만, 동양의 역사는 공자와 논어를 벗어나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라 생각한다. 그만큼 논어는 서양의 성경에 버금가는 최고의 고전(古典)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논어는 무엇보다 만남의 올바름을 추구하는 책이다.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자아의 도덕적 성찰을 바탕으로 다른 인간과의 만남에서 최선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논어가 지향하는 목표이다. 그것을 공자는 인(仁)이라 표현하였다. 이를 유학에서는 자신을 닦는 수기(修己)와 다른 사람을 편안케 하는 안인(安人)이라 하기도 하며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는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충(忠)과 다른 사람을 자신과 같이 배려하는 서(恕)라고 말한다. ‘충’은 국가에 대한 충성보다는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본래의 뜻이다. 결국 논어는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가짐에 대한 것이 주요한 내용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마음가짐과 다른 사람에 대한 자신의 마음가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공자의 말이다.

우리는 일생동안 많은 만남을 한다. 그 만남들을 통하여 우리는 많은 이름을 가지게 된다.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나 아들·딸이라는 이름, 사회생활을 통하여 가지는 상사와 부하, 선배와 후배, 사장과 사원, 선생과 학생, 그리고 다시 가정에서 보면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수많은 이름들이 서로 중첩되는 만남의 삶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공자는 만남에서 바르게 하라는 정(正)을 강조한다. 무엇을 바르게 하는 것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이름을 바르게 한다는 정명(正名)이다. 아비는 아비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그 이름에 걸맞은 신뢰있는 말과 행동을 강조한 것이다. 위의 만남의 유형에서 우리는 홀로 있는 이름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슨 이름이든 상대가 있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다. 공자가 말한 사랑 즉 인(仁)도 사람 인(人)자와 두 이(二)자의 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만남의 올바름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보면 논어는 오늘날에도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오래되었으나 살아있는 책이다. 이익추구를 최우선시하는 현대 자본주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보면 “부(富)라는 것은 사람의 타고난 본성이라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얻고 싶어 한다”고 하였다. 사람의 본성은 자신의 부귀와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논어에서는 그 부를 정당하고 도덕적인 방법으로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논어의 이인편에 보면 공자는 “부귀(富貴)는 모든 사람이 바라는 바이나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처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도 언변과 상술로 엄청난 재력을 갖추었지만 공자가 거기에 대한 비난은 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과 격식 즉 예(禮)를 갖추라고 가르친 면에서도 찾을 수 있다. 또한 공자는 인구가 많은 위(衛)나라를 지나면서 국가가 가장 우선해야 할 일로 부유하게 하라고 말하며 그 다음에 교육이 필요할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공자는 당시 백성들의 피폐한 삶을 도외시하고 왕실의 안위와 부유함만을 추구하는 위정자들에게 ‘백성이 굶주리면 임금은 누구와 더불어 부를 누릴 것 인가?’라고 질타하기도 한다. 공자는 위정자가 백성이 적은 것을 근심할 것이 아니라 고르지 못한 것을 근심하여야 한다(不患寡而患不均)고 말하기도 하였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이익을 추구하되 상도(商道)를 지켜야 하며 국가나 기업의 리더는 필연적으로 만남을 가지는  국민과 사원들에게 고르게 이익을 배분하여야 한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성찰에 바탕 하여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수기안인의 경제관이다.

이러한 공자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일본을 근대화의 경제적 초석을 닦은 인물이 있다.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치(1840-1931)는 경제적 이익 추구와 의(義)의 합일을 주장하며 논어와 주판 즉 경제가 추구하는 바는 일치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정당한 방법으로 이익과 부를 추구하는 것은 부끄럽지 않은 것이며 논어와 주판은 일치한다’고 하였다. 그는 특히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일본의 조세·화폐·금융정책을 근대적으로 개혁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의(義)와 리(利)의 합일 전통은 개성상인들의 면모에서 이를 찾을 수 있다. 나라에 기근이 들면 막대한 재화를 기부하는 것이 개성상인들의 전통이자 인(仁)의 실천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나 일본의 국가경영이나 기업경영에서 시부사와 에이치나 개성상인이 추구한 의와 이익의 합일의 가치를 이해하고 논어경영을 실천하고자 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국내 최고의 기업이라는 곳에서도 창업주가 논어를 좋아했다는 이유로 전 사원들에게 필독서로 읽히고 있는 듯하나, 논어의 생각을 윤리적 경영의 지침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논어와 주판을 하나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둘로 여기는 것은 다양한 만남과 관계맺음에서 긴박하게 돌아가는 현란한 주판만 응시할 뿐 사람의 마음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단순한 물물교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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