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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광수 정치학 박사 전 한국시민윤리학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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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는 우선 요즈음 지나치게 유행하고 있는 SNS를 통한 수다 떨기 문제부터 시작됐다. 사람을 마주하고서도 수다 떠는 일에 익숙지 못한 우리들은 무엇보다 그런 공간 자체에 경이로움과 낯섦을 느낀다는 데 공감했다. 얼굴을 보고서는 차마 안 되는 소통을 굳이 통신으로 한다는 발상이 일단 신선하다. 순식간에 수만, 수십만명이 내용을 공유한다는 것도 섬뜩하다. 그리고 누군가 포근하게 안아주듯 위무의 한 마디를 하면 바람에 풀 눕듯 엎어지는 것도 대단하고 반대로 누군가 주책을 부리면 한방에 훅 보내버리는 것도 살벌하다. 도청도설(道聽塗說)의 마당이라고 일축해버리기엔 몸집이 너무 커져 있다.
이 대목에서 그 공간의 몇몇 스타 작가들의 발언 내용과 레토릭에 대해 이야기했다. 발단은 그래도 나보다는 훨씬 그 방면에 부지런한 내 친구가 작가 이외수의 공간에다 그 집단의 의견과는 좀 다른 견해를 올리면서였다. 선생께서 이런저런 의제에 대해 하도 시시콜콜 간섭하시니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말로는 국가 대사에 대해 이렇게 한마디 했다고 매우 간단하고 점잖게 한 글 남겼더니 선생의 휘하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집단 몰매를 가하더라는 것이다. 작가를 아끼는 마음에서 명성이나 내공에 맞게 큰 문제에 큰 말씀을 하시라는 뜻이었을 뿐인데, 겨우 그 정도의 다른 의견에 대해서도 차마 옮기기 힘든 험한 표현으로 적대감을 보이더라는 것이다.
말이란 잘하면 말씀이 되지만 잘못하면 소리가 되는 법이다. 그리고 먹어주지 않는 곳에선 조용히 있는 게 권위가 된다. 언어가 통하지 않고 서로 삼가는 예의가 없다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친구가 당한 경우가 남 일 같지 않았지만 뭐 이런 어수선한 논조로 그를 위안하고 술만 권했다. 맛이 썼다. 문제는 이처럼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표현과 편 가름 그리고 하늘을 날 것 같은 가벼움이 문화계만의 현상이 아니고 아주 일반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세계적 기업의 총수인 이건희 회장이 재산 소송 건과 관련하여 친형을 품인(品人) 하던 대목을 보면서 참 놀라고 민망했었다. 무슨 억하심정인지는 모르겠으나 일흔을 넘기신 아우와 여든을 넘기신 형님 사이 공방의 레토릭이 그렇게 적나라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노블(noble)까지야 아니더라도 교양과 격은 기대했었는데, 참 까칠하고 건조했다.
얘기가 정계로 향하면 점입가경이다. 현 정부의 실세였고, 연말 대선에 출사표까지 던진 이재오 의원은 박근혜 의원이 경선 룰 개정에 응하지 않는다고 몽니를 부리더니 급기야 여성 대통령 시기상조론까지 거론했다. 한마디로 남자답지 못하다. 살다 보면 싸울 일도 있다. 하지만 싸우려면 정정당당하게 싸워야 한다. 그걸 의전(義戰)이라 부른다. 상대방의 홈그라운드에서 상대방의 룰로 싸워 이기는 것이 참다운 승리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아예 싸움을 걸지 말아야 한다. 주먹도 제대로 못 쥐면서 구시렁거리기만 하면 흉할 뿐이다. 7선의 정몽준 의원이나 재선의 김문수 경기지사도 거물다운 무게보다는 금도(襟度) 없이 각박한 레토릭만 구사하고 있다. 그 정도의 관록들이라면 정치란 곧 언어라는 이치를 깨닫고 비유나 은유 같은 우아한 방법으로 얼마든지 의사를 표현할 수 있으련만, 옹색한 직접화법에 머무르고 있다. 위엄이 없다.
야권으로 오면 상황은 더 딱하다. 굳이 거론할 가치가 없는 운동권 출신 허접한 인사들의 해괴망측한 언사는 생략하기로 하더라도, 그래도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해찬 의원이나 대통령 후보를 지낸 정동영 전의원만큼은 언어에 격조가 있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이들이 쏟아내는 적대적이고 분노에 찬 표현들은 어른으로서나 지도자로서나 자질이 부족함을 증명하고 있다. 배려와 자기 성찰이 없는 차가운 매욕(罵辱)은 썰렁할 뿐이다. 도대체 뭘 보고 배우라는 뜻인지 교육이 안 될 지경이다. 정치란 곧 말의 운용이고 리더십은 바로 말의 힘이다. 선동이 설득은 아닌 것이다.
말은 마음의 표현이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오는 것이다. 내 속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시대 누구인들 마음 편하기만 했을까. 억하심정이나 속수무책의 좌절과 절망을 경험하지 않고 사는 삶이 있기나 할까. 그렇다고 성질대로 마구 지르며 살 수도 없는 법. 그러니 더욱 절제가 필요한 것이다. 말의 범람, 천박하다. 편 가르기 말다툼, 지질하다. 침묵의 소리가 그리운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