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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빛과 소금] 이름값을 한 백선행 여성 사회사업가
오피니언

[빛과 소금] 이름값을 한 백선행 여성 사회사업가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2/07/03 10:47 수정 2012.07.03 10:47



 
↑↑ 강진상 목사
평산교회
 
우리나라 여성 중 사회적으로 영예를 누린 평양과부 백선행(白善行, 1848~1933)은 1848년 태어났다. 그는 이름이 없었다. 아버지 백지용은 가난한 농민이었다. 그나마 7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편모슬하에서 교육도 받지 못한 백 씨는 14세에 가난한 농민 안재욱에게 출가했다. 그러나 남편은 결혼 직후 2년 만에 자식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남편과 사별한 후 평생 수절하며 재산을 모은 그녀는 1908년 첫 공익사업으로 대동군에 돌다리를 부설했다. 사람들은 다리를 ‘백과부 다리’라 불렀는데, 백과부라는 말은 민망해 ‘선행’이라 부르고 이름도 백선교라고 고쳐 불렀다. 그 뒤 광성보통학교, 숭현여학교, 창덕보통학교, 숭인상업학교 등의 설립과 장학 사업에 요즘 돈으로 180억원을 기부했고, 1925년 전재산을 구빈(救貧)을 위해 사회단체에 내놓았다. 평양사람 치고 백선행을 존경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세상을 뜨자 15만 시민이 사회장을 치렀다. 최초의 여성 사회장이었다.

그녀의 감동적인 일화를 소개한다. 그녀는 선산을 만들려고 대동강변에 있는 만달산을 샀다. 남편의 무덤을 이장하려고 가보니, 쓸모없는 산이었다. 실망이었지만 신앙심이 깊은 집사는 하나님의 섭리로 알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감사드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 땅을 샀더라면 그가 망했을 것인데, 이 아픔과 손실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 않고 제게 돌리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곧 평양 시내에는 백 과부가 망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후 일본 건설회사가 대동강에 다리를 놓으려 지질조사를 하던 중 만달산이 석회암 산임을 알게 됐다. 기업주는 산을 사려했으나 백선행은 거절했다. 결국 평안도지사를 동원해 백선행이 출석하는 교회 목사를 찾아왔다. 그녀가 목사의 말에 순종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목사는 백집사를 심방해 팔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백선행은 “목사님,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사기를 당하여 돌산을 샀는데, 다른 사람이 그런 산을 2만냥에 사 간다면, 그 사람 망하는 것을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제 양심으로 나 혼자 망하고 말아야지, 다른 사람 망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고 대답했다. 얼마나 청순한 신앙의 사람인가? 백선행 집사는 목사로부터 산이 시멘트를 만들 수 있는 석회암 산이라는 설명을 듣고, 그 산을 2만냥에 팔아 백배의 이득을 얻었다. 백선행의 남다른 점은 쌓은 부를 아낌없이 사회에 환원하고 빈손으로 떠났다는 점이다. 한국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백선행’, 이름값을 하고 살다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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