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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병호 남강역리연구원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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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이해찬 전 총리가 라디오 전화 인터뷰 중간, 난처한 칠문이 계속되자 버럭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청취하던 국민들을 무시하는 오만한 행위였다며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사건 자체보다 노련한 정객이 전국의 청취자들 앞에서 굳이 품위에 손상되는 행위를 하였을 때는 또 다른 정치적 노림수가 있었지 않을까 의심하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훨씬 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웬걸 그가 화를 무시로 내어 ‘버럭 총리’라는 별칭이 있었다는 후속보도에 사주명조를 검색해보니 짐작대로 화기가 매우 승한 사주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체면이나 주위의 평판에 예민하다. 나이 들면 소형차 타기가 민망하고, 회식자리 분위기 때문에 마시고 싶지 않는 술도 마셔야 한다. 불쾌한 일에도 솔직하게 화내서는 안 된다. 옹졸한 사람으로 치부된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되니 참으로 속은 답답해진다. 논어에 나오는 이야기다. 미생고라는 사람의 집에 누군가 식초를 얻으러 왔다. 마침 그의 집에도 식초가 없었다. 미생고는 일부러 이웃집에 가서 식초를 얻어다 그 사람에게 주었다. 이 일화를 접한 공자는 “누가 미생고를 솔직하다고 말하는가”하며 미생고의 체면치레를 비판했다. 없으면 못 빌려주는 것이 당연지사다.
이런 맥락에서 약속과 다른 사회자의 질문에 체면불구하고 버럭 화를 내고 전화를 끊어버린 태도, 상식에 어긋나지만 일견 개인의 솔직성이 담보되는 작은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다. 문제는 그가 일반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치적 지위가 높으면 그 책임 또한 높다. 그는 한 때 ‘왕 총리’라고 불린 적이 있었다. ‘왕(王)’이라는 글자는 유교에서 사람이 귀순해서 몰려오는 중심 되는 곳이라고 정의된다. 왕의 지위에서 사람들이 자신과 같아지기를 바라고 사사건건 잘못과 실수에 화를 낸다면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
공자는 ‘거상불관’(居上不寬)―높은 자리에 있는 자가 너그럽지 않다면 그 인간은 다시 쳐다 볼 가치조차 없다라고 말했다. 어디 정치인뿐이랴 화 기운이 강해 뚜껑 자주 열리시는 분들, 매사 화를 내기에 앞서 그 화의 근원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꼼꼼히 살피는 버릇을 가져야한다. 화가 사그라지는 효과가 있다는 심리학계의 조언이다. 앞으로 계속될 불볕더위, 부디 화를 잘 다스리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처신해야 한 여름 지내기가 수월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