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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서 (주)재호상사를 운영하는 성영수(68) 씨는 해마다 형편이 어려운 중·고등학생 10명에게 매달 10만원씩 지원하고 있다. 벌써 3년째다.
전북 진안이 고향인 성 씨는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부모님이 열심히 농사일을 하셨지만 가정형편은 어려웠다. 공부를 잘했던 형의 대학 진학을 위해 성 씨는 초등학교를 5학년까지 다니다 말았다. 형이 잘 돼야 동생이 잘 될 거란 생각 때문이다. 학업을 중단한 뒤로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형편은 달라지지 않았다. 제대 뒤 일거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던 중 양산의 한 제지공장에 취업을 하면서 양산에 둥지를 틀었다.
“1974년에 단돈 9만원을 가지고 부인과 아들 하나, 딸 하나 데리고 왔다. 연탄 살 돈이 없어 산에서 나무를 해 겨울을 났을 만큼 형편이 어려웠지. 못 먹이고, 못 입히고, 과자 하나 제대로 못 사줬다. 항상 마음에 남지만 잘 커줘서 고마울 뿐이다”
형편이 나아지기 시작한 것은 2007~8년. 1998년 회사를 그만 두고 시작한 재활용사업체가 자리를 잡으면서 기부를 실천하기로 마음 먹었다.
첫 기부는 2009년이었다. 설과 추석에 쌀 500만원어치를 서창동주민센터에 기탁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와 서창동 추천으로 선정한 청소년에게 매달 10만원씩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지원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고향인 전북 진안의 어려운 청소년 두 명에게도 2010년부터 매년 100만원씩 전달해오고 있다. 이밖에 서창지역 김장담그기 행사가 열리면 지원금을 보태고 있다.
이같은 성 씨의 기부는 대를 이을 것으로 보인다. 아들 용근(36) 씨가 기부의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할진 모르지만 형편 닿는 데까지 해야지, 안 그래? 상황이 안 될 땐 아들이 이어 나가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긴 하지. 하지만 아들이 결정할 부분이니…” 어린 시절 어려움을 이겨내고 사회에 베푸는 선행을 자녀가 본받는 것이다.
이처럼 지역 청소년에게 선행을 꾸준히 베푸는 ‘키다리 아저씨’ 성 씨에게 기부는 어떤 의미일까. “어려운 아이들한테 도움이 될랑가 싶어서 하는 거지, 아무 생각이 없어. 기부는 이래야 한다는 것도 없고.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는 게 기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