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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교단일기]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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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교단일기]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2/07/10 11:37 수정 2012.07.10 11:37



 
↑↑ 유승희
소토초등학교 교사
 
‘주변에서 나는 소리’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들으면 즐거워지는 소리는 무엇이 있을까?”라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피아노 소리요”, “웃음소리요”, “인사하는 소리요”라고 한다.

“그럼 들으면 즐거워지지 않고 기분이 나빠지는 소리는?”하는 물음에는 “화내는 소리요”, “친구가 놀리는 소리요”, “밤중에 시끄럽게 하는 소리요” 라고 대답을 하였다.

이때 현이(가명)가 큰소리로 “엄마아빠 싸우는 소리요” 하자, 아이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맞아요. 우리 엄마아빠도 소리 지르며 싸워요”, “물건도 던져요”, “싸우는 소리 들으면 가슴이 두근두근해요”, “이러다 엄마아빠가 이혼하는 건 아닌지 걱정돼요” 라며 여기저기서 큰소리로 말을 하는데 평소 말이 별로 없는 철이(가명)가 “싸우는 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라고 하였다.

가끔 수업을 하다 <우리 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부부싸움’에 관한 말이 나오면 서로 먼저 말하려고 난리를 피운다. 아이들의 엄마아빠가 어떻게 다투는지 그 상황이 눈에 선할 정도로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걸 2학년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해시키지’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특히, 밖에서 어른들이 다투는 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는 철이 말이 며칠을 두고두고 머릿속을 맴돌았다.

교실에 앉아서 선생님을 쳐다보는 21명의 아이들은 등교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맑고 밝은 표정이다. 그 나이만큼 나름 상처도 있고 고민도 있을 거라고 짐작하지만 세상을 9년째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주변 환경이 녹록지 않음을 종종 느낀다.

“너희들이 친구들과 다투는 것처럼 엄마아빠도 같아. 의견이 안 맞아서 어른들도 다툴 때가 있거든. 그리고 또 화해하잖아”

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이렇게 말을 해주지만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충격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이라는 것을 부모들은 알고 있을까? 서로 엄마아빠의 이야기를 하고 들으면서 아이들은 어른들 생각처럼 부끄럽다는 감정보다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하는 위로와 안도감을 받는다.

경제적으로 위축되고, 나만 이 사회에서 소외된 것 같고, 무능력하게 느껴지는 어른의 팍팍한 모습은 아이들에게도 꼭 같이 투영되어 나타난다. 예전에는 부모가 경제적으로 좀 어렵고 덜 배워도 가정은 ‘따뜻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요즘은 해체되는 가정이 많아지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이 ‘아이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알의 씨앗이 싹을 틔우려면 적당한 온도와 흙이 있어야 하고, 싹이 트고 난 뒤에도 알맞은 영양분과 물과 온도와 공기와 보살핌이 있어야 튼실한 열매를 맺게 된다. 하물며 아이들이 한 사람으로 자라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는 표현을 쓰지 않아도 되는 현실이 아이들에게 주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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