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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유적(지명)으로 보는 향토사 ⑤ 천성산과 원적산봉수대
천성산은 양산사람들 삶의 보금자리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2/07/10 13:25 수정 2012.07.10 01:28







↑↑ 매년 5월이면 철쭉꽃의 붉은 물결로 뒤덮이는 천성산 정상
 
↑↑ 천성산(千聖山)은 양산의 중심에서 남북으로 뻗어있다. 그 동쪽에는 웅상 4개 동지역 사람들이 산에 기대어 살고 있고 서쪽으로는 양산, 상북, 하북사람들이 기대어 살고 있어 양산사람들의 삶의 보금자리라 할 수 있다. 신기하게도 서쪽인 양산 쪽은 물이 북에서 남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되고 동쪽의 웅상 쪽은 남에서 북으로 흘러 울산 태화강과 합류한다.
 


산 이름도 여러 가지로 의미 다양


천성산의 지명은 옛날에는 원적산(圓寂山)이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언제부터인가 천성산으로 불렀고 제2 금강산이라고도 한다. 또 제일 높은 산봉우리를 원효산(元曉山)이라고도 한다. 그러니까 원적산, 천성산, 원효산은 지명은 달라도 모두 같은 산이고 불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신라의 승려 원효대사와 관련이 있는 지명이다.

원효대사가 이 산에서 1천명의 성인을 길러내었다 해서 천성산이 되었고, 산 정상에는 한때 군부대가 주둔해 있으면서 부대위치 명칭을 원효로 사용하면서 원효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제일 높은 봉우리가 해발 922m인데 군부대가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가면서 그 지명은 남게 되어 같은 산의 지명에 원효산과 천성산과의 호칭에 혼동이 생겼다. 그래서 2000년 5월에 국립지리원 중앙지명위원회에서 명칭 통일을 결정했는데 이 산의 지명을 천성산이라 하고 원효산이라 하던 봉우리를 천성산 제1봉이라 하고, 천성산이라 부르던 봉우리를 천성산 제2봉이라 칭하기로 결정했다.


화엄벌에는 환경의 보고 화엄늪이


천성산 정상에서 약간 아래로 해발 790m 쯤에 큰 나무가 없는 약 35만평의 넓은 벌판이 전개된다. 이곳은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제자들에게 화엄경을 설법한 곳이라 해서 화엄벌이라고 한다. 이곳은 넓은 초원으로 되어 있고 철쭉군락지로도 유명하다.

화엄벌 안에 넓은 습지가  있는데  가로 150m, 세로 500m 크기의 면적으로 오랜 세월 동안 먼지와 낙엽으로 쌓인 이탄층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끈끈이주걱 등 세계적인 희귀식물 약 235종이 서식하고 있고 또 천연기념물인 참매, 황조롱이, 도롱뇽 등 325종의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이곳은 화엄벌 안에 있다고 해서 화엄늪이라 했다. 높은 산 습지로서 희귀한 동·식물을 간직하고 있는 귀중한 곳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화엄늪보다 조금 낮은 해발 700m 지점에 가로 100m, 세로 250m 크기의 늪지역이 또하나 형성되어 있다. 이곳을 밀밭늪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도 역시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음이 보고되었다. 당국에서는 이곳 습지의 훼손을 막기 위하여 2002년 습지보호 지역으로 지정하여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울타리를 설치해 놓고 있다.


↑↑ 상북면 주민들에 의해 잘 복원된 원적산봉수대


왜적 침입 알리던 원적산봉수대

 
화엄벌에서 서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원적산봉수대(圓寂山烽燧臺)가 있다. 조선시대 원적산이라 부르던 때 만들어졌기 때문에 원적산봉수대라고 부르고 있다. 봉수제도는 삼한시대부터 있었으나 기록에 나타난 것을 보면 원적산봉수대는 대개 조선 전기인 15세기 후엽부터 조선 말기인 19세기 초반 까지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적산 봉수대는 범어사 앞 계명봉 봉수대에서 보내온 신호를 받아서 언양의 부로산 봉수대로 보내 주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당시 이곳 봉수대의 내용을 자세히 기록된 문서가 있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이곳에는 군인이 100명이 주둔했고 굴뚝이 5개, 기와집 2칸, 창고 2칸, 깃발 5개, 작은북 1개가 있었다고 한다. 봉수의 방법은 왜적이 바다에 있으면 굴뚝 2개에서 연기를 내고, 왜적이 가까이 오면 굴뚝 3개를 사용하고, 병선이 접하면 굴뚝 4개를, 왜적이 육지에 상륙하면 5개는 사용하여 연기를 올렸다고 한다. 이 봉수대는 이런 기록들이 그대로 남아있음으로 그 값어치는 다른 곳보다 높이 평가된다고 할 수 있다.

한동안 방치되고 있던 원적산봉수대는 1996년 지역 주민들의 의지로 복원되었다. 상북면 주민들이 지역 화합을 위해서 원적산봉수대보존회를 조직하여 봉수대의 내력을 조사하고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고자 했던 노력이 크게 돋보인다. 그러므로 더욱 값진 문화재가 아닌가 한다. 1992년에 경상남도기념물 제118호로 지정되었다.


내원사 계곡의 비경과 홍롱폭포


신라시대 원효대사는 천성산 아래에 대둔사라는 큰절을 짓고 그 주변에 89개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내원사는 그 89개 암자 중의 하나이다. 계곡 입구에서 내원사까지 약 4km의 계곡은 그야말로 천혜의 비경이다. 그래서 이곳을 제2금강 이라고 했다. 계곡 주변경관이 너무나 수려하다. 물이 깨끗하고 공기가 상쾌하니 마음이 한결 맑아지는 곳이다.

전국에서도 이렇게 맑은 계곡은 보기 힘든다. 그래서 내원사 계곡을 양산 8경 중에 하나로 꼽고 있다. 내원사 계곡을 위시하여 그 주변 91필지 1천700만㎡가 1985년에 경상남도 기념물 제81호로 지정되었다.

천성산 정산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거의 끝자락에 한 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폭포가 있다. 이곳은 물이 많을 때는 폭포가 장관을 이루면서 물안개가 햇빛을 받아 영롱한 무지개가 피어난다고 해서 홍롱폭포(虹瀧瀑布)라고 이름하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이곳을 홍룡폭포라고 발음하게 되어 지금은 그 이름이 변화되었다. 하지만 한문으로 글을 쓰게 되면 홍롱폭포(虹瀧瀑布)라고 써야 한다.

천성산 동쪽 9부 능선 위치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미타암이라는 암자가 있는데 이 암자에는 석굴이 있고 그 안에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미타여래입상(阿彌陀如來立像)이 있다. 높이가 149㎝ 되는 돌로 조각된 불상이 석굴 속에서 동해 바다를 보고 서 있다. 이곳에 올라가면 웅상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아미타여래입상은 1989년도에 국가 보물 제998호로 지정되었다.

↑↑ 여름 휴가철이면 주변 피서객들이 몰리는 내원사 계곡


천성산 일출은 양산인의 기상.


천성산은 우리나라에서 해를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2000년부터 매년 1월 1일이면 많은 시민들이 새해 해맞이 행사를 이곳 천성산 정상에서 하고 있다.  

천성산의 우뚝함은 우리 양산인의 높은 기상이다. 우리 삶의 보금자리를 잘 가꾸는 것이 후손들을 위한 오늘날 우리의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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