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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서서 오줌 누고 싶다
사회

서서 오줌 누고 싶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2/08/07 13:22 수정 2012.08.07 01:22




여섯 살 때 내 남자친구, 소꿉놀이 하다가 / 쭈르르 달려가 함석판 위로/ 기세 좋게 갈기던 오줌발에서 / 예쁜 타악기 소리가 났다// 셈여림이 있고 박자가 있고 늘임표까지 있던,


그 소리가 좋아, 그 소릴 내고 싶어 / 그 아이 것 빤히 들여다보며 흉내 냈지만 / 어떤 방법, 어떤 자세로도 불가능했던 나의/ 서서 오줌 누기는 / 목내의를 다섯 번 적시고 난 뒤/ 축축하고 허망하게 끝났다


도구나 장애를 한번 거쳐야 가능한/ 앉아서 오줌 누기는 몸에 난 길이/ 서로 다른 때문이라 해도 / 젖은 사타구니처럼 녹녹한 열등 스며있었을까// 그 아득한 날의 타악기 소리는 지금도 간혹 /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로 듣지만 / 비는 오줌보다 따습지 않다


서서 오줌 누는 사람들 뒷모습 구부정하고 텅 비어있지만,// 서서 오줌 누고 싶다/ 선득한 한 방울까지 탈탈 털고 싶다

* 이규리 시인
경북 문경 출생. 1994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으로 『앤디 워홀의 생각』(세계사, 2004), 『뒷모습』(랜덤하우스코리아, 2006)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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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주변 혹은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남편의 위신을 위해 자신을 낮추어야 했고, 집안의 안정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억제해야 했으며, 자식의 출세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해야만 했지요. 이런 역사적 국면의 이면에는 권력의 억압적인 힘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남성중심의 사유가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여성의 욕망을 억압했던 것이지요. 시인은 이러한 사회적 모순을 꼬집으면서 남녀평등의 실현을 외치고 있습니다.   

 
↑↑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시인은 남자친구가 ‘서서 오줌 누는 소리’를 듣고 몹시 동경했나봅니다. 그래서 <서서 오줌 누기>를 시도했지만, 결국 <목내의를 다섯 번 적시고 난 뒤/ 축축하고 허망하게 끝>나고 맙니다. 오줌 누는 행위는 인체의 구조적 차이일 뿐, 차별적 기능은 아니라고 애써 위안해보지만‘젖은 사타구니처럼 녹녹한 열등’에서 벗어나진 못합니다.

<서서 오줌 누고 싶다>는 것은 결국 남성중심적 사유에 대항한 여성의 몸부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서 고귀한 것.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짓고 남성이 더 우월하다는 기존의 인식은 이제는 과감히 버려야 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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