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게
서대문 신학대학 뒤 고풍한 담장 길에
담장보다 오래 묵은 은행나무 밑으로 오게
그 은행나무보다 오래 묵어온 마음같이
저녁비가 내리고 있네
여보게
오려거든 그냥 오지 말고
지금은 없어진 서대문 전찻길을 찾아서 오게
고풍스런 바람 한 자락 의젓이 걸치고
예전에 우리 자주 가던 길을 따라
헌옷 차림 그대로 오게
* 조정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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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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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가 말을 건네는 “여보게”는 아마도 젊은 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를 부르는 것 같은데요, “서대문 신학대학 뒤 고풍한 담장 길”, “지금은 없어진 서대문 전찻길” 등은 독자의 마음을 추억 속의 공간으로 끌고 갑니다.
양산성당 앞 담쟁이덩굴 가득하던 돌담길, 지금은 없어진 사거리 세화당 약국, 갈래머리로 뛰어다니던 양산천 둑길, 연락이 닿지 않는 어릴 적 친구들. “헌옷 차림 그대로” 내게 올 수 있는 친구는 과연 몇이나 있을까? 가슴 속에 추적추적 “저녁비”가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