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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상 목사 평산교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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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는 1895년, 엄청난 좌절과 슬픔에 잠겨 있을 때가 있었다. 목화를 재배하여 생활을 꾸려가던 곳곳에 ‘목화바구미’가 들끓어 목화 수확이 절반으로 떨어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염병까지 나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대로 포기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몇몇 농민들이 자신들의 밭에서 목화를 뽑아내고 대신 땅콩을 심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곳은 점점 땅콩이 자라기에 좋은 땅으로 변했다.
얼마 후 화학 모직이 개발되면서 목화산업은 곧 사양 산업이 되었지만, 앨라배마 주는 그런 변화로 인한 피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다. 목화바구미로 인한 위기가 도리어 큰 기회를 가져다 준 것이다.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나타낸다. 하나는 부정적이고 다른 하나는 적극적이다. 전자가 삶을 파편화시킨다면 후자는 더 나은 삶을 창조한다. 위기는 내 사정과 형편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위기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인생은 성장하고 완숙하게 된다.
토머스 쿤은 “위기가 중요한 것은 도구를 바꿔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위기는 언제나 배움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20년이 지난 후엔 앨라배마 주는 ‘땅콩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풍요롭게 되었다.
그 마을 입구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진 기념탑이 있다.
“우리는 목화바구미에 감사한다. 그날의 시련이 없었다면 우리는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목화바구미여, 그대들이 준 고난에 감사하노라”
우리는 인생길에서 수많은 거침돌을 만나게 된다. 거침돌은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때로는 그 앞에 주저앉게 한다.
고생 끝에 이제 행복을 누리나 했는데 건강에 이상이 오거나, ‘이번 일만 잘되면 새로운 인생을 사는 거야’하는 마음으로 일을 추진하다가 상황이 악화되어 덫에 빠지기도 한다.
이제는 방황하지 않고 잘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더 큰 방황의 여건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경험한다. 인생의 거침돌 앞에 멈추어서면 그곳이 우리 인생의 종착지가 될 수 있다.
앨라배마 주 농민들은 어떻게 자기 앞을 막아서는 거침돌을 오히려 디딤돌로 삼아 넘을 수 있었을까? 거침돌에 걸려 넘어질 때 실망하지 않고 디딤돌을 찾았기 때문이다.
‘위기’라는 거침돌 속에 ‘기회’라는 디딤돌 발견할 지혜의 눈이 필요하다. 거침돌을 아예 디딤돌로 삼는 지혜가 정말 필요한 때이다. 앨라배마 주 농민들은 목화바구미라는 거침돌을 디딤돌로 삼아 ‘땅콩의 도시’라는 더 큰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가 함께 온다. 성공한 사람들은 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고 새로운 기회로 만들었다. 우리 또한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