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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이집트의 정치변화와 우려..
오피니언

이집트의 정치변화와 우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2/08/28 10:27 수정 2012.08.28 10:28





 
↑↑ 신원용
영산대학교 아세안비즈니스학과 교수
 
지난 6월 23일 이집트 역사상 최초의 민선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의 당선이 발표되었다.
 
부정 선거 논란으로 극도의 대치를 보였고, 폭풍전야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다행히도 무사히 위기 상황을 넘기고 있는 것 같다. 무함마드 무르시는 극단적 원리주의를 표방하는 무슬림 형제단의 리더 중의 한 사람으로서 혁명 이후 정치활동을 위해 창설한 자유와 정의당의 대표였다.

그는 무슬림 형제단이 추천한 대통령 선거 제1후보가 아니었지만 다른 후보에게 결격사유가 있음으로 인해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그가 이집트의 민선 대통령 1호가 된 것이다.

선거 결과에 대해 대체로 세 가지 부류의 반응을 볼 수 있다. 먼저, 그의 당선에 축배를 드는 사람들이다. 무슬림 형제단을 지지하던 추종세력들과 쌀라피 주의자와 같은 과격 원리주의자들, 그리고 이슬람주의자는 아니지만 반군부의 전선에 동참하여 그에게 표를 던졌던 일반 무슬림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그들은 결과 발표 이후 거리로 쏟아져 기뻐하며 춤을 추었다. 그의 당선 소식이 알려지던 날 밤 그들은 온통 축제의 밤을 보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84년 동안 불법 단체로 낙인 찍혀 억압과 탄압을 받아오다 그들이 그토록 소원했던 정권을 차지하게 되었으니 그들의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무슬림 형제단은 1928년 하산 반나라는 사람이 이집트의 이스마엘리아라는 도시에서 창설한 단체로 이슬람 샤리아 법이 세속 국가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그들의 정치적 이상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치ㆍ종교적 이상 실현을 가장 반대하고 있던 정치지도자였던 나세르, 사다트, 무바르크 정권 등에서 여러 차례 대통령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암살시도가 밝혀져 정부에 의해 많은 형제단 소속 리더들이 투옥되고 사형되었다.

무바르크가 대통령으로 집권했던 1984년, 6명이 처음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올해 쟈스민 혁명 이후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체 의석의 59%인 106명이 당선된 것이다. (쌀라피 정당 소속의 당선자를 포함하면 과격 이슬람주의자들이 2/3이 넘었음) 이 결과 토요일 형제단 소속인 무함마드 무르시가 최초의 민선 대통령이 되었다.

두 번째 부류는 그의 당선에 잠잠하게 기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난 선거에서 무함마드 무르시도 지지하지 않고 아흐마드 샤피끄도 지지하지 않던 사람들이다.

우리말로 하면 중도층 소시민 무슬림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과격 이슬람주의를 표방하는 무슬림 형제단을 싫어하고, 이 나라가 종교 국가로 변모하는 것을 반대하여 무르시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또한 군부의 지지를 받고 있던 후보이자 혁명이 일어날 때 시위대를 탄압한 아흐마드 샤피끄가 부패한 구정권의 대표라고 보기에 그에게도 투표하지 않았다.

실제로 지난 선거의 투표율이 51% 정도였는데, 투표를 하지 않았던 49%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딜레마에 빠졌었다. 양쪽 다 최악의 후보였기에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참정권을 포기했지만 무르시의 당선이 확정되고 우려했던 충돌이 없자 크게 안도하고 있다. 누가 당선되느냐보다 안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무르시가 당선 일성으로 여러 긍정적인 공약을 내어놓자 이집트의 미래에 기대를 걸어보는 심정이다.

사람들의 이런 기대심리를 볼 수 있는 것이 주가이다. 무르시의 당선 이후 이집트 주가는 지난 30개월 동안 가장 큰 오름세로 올라섰으며, 주요 서방 선진국들은 그의 당선을 축하하며 조심스럽게 미래를 기대하는 논평들을 내놓고 있다.

세 번째 부류는 그의 당선이 여전히 불안하고 불편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무르시와 무슬림 형제단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서 주로 아흐마드 샤피끄를 지지한 사람들인데, 그들 가운데 자유주의적인 무슬림도 있고 기독교인들도 있다.

그 가운데 특히 기독교인들은 무슬림 형제단에 대해 극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집트 콥틱 기독교인들이 기억하는 무슬림 형제단은 테러주의자들이자 언제든지 말을 바꾸는 위선자들이며, 자신들을 억압하는 포악한 세력로 규정한다.

실제로 무슬림 형제단은 84년의 역사에서 수차례 국가 원수를 암살하려 했고 그로 인해 정치적인 탄압을 받아왔다. 그들이 주창한 ‘지하드’ 투쟁 이론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테러주의자의 대명사 하마스 등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했다.

무슬림 형제단은 금번의 혁명 이후에도 그들은 여러 차례 말을 바꾸었는데, 국회의원 선거에 자신들이 25%만 출마시키겠다고 하였지만 전 선거구에 출마시켰으며,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무슬림 형제단 출신이 4명이나 출마를 했던 것이다.

무슬림 형제단 소속의 사람들(혹은 과격 원리주의자들)은 기독교인들의 권익과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 경우들이 많았다. 기독교인들의 집이나 교회를 방화하는 일을 사주하거나 교회 건축을 방해하는 일 등에 이들이 앞장서는 사례들이 빈번했다.

때문에 이들은 무슬림 형제단의 집권만은 막으려 했다. 그들은 아흐마드 샤피끄가 좋아서가 아니라 무슬림 형제단이 싫었고, 그들로 인해 이 나라가 이슬람화되어가는 것을 막고자 샤피끄에 투표하였던 것이다.

역사는 우리의 희망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기에 아이러니라고 하는가 보다. 향후 이집트 역사가 어떻게 펼쳐질까? 무슬림 형제단이 석권한 이집트, 과연 그들의 이상대로 원리주의 이슬람 국가로 변모해 갈까? 그래서 이란과 같은 과격한 회교 원리주의 혁명이 완성될까? 매우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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