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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다블람 정상을 눈앞에 두고 캠프1로 향하는 여정은 너들지대의 바위길로 인해 체력소모가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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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35분경 대원들이 캠프1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연락이 무전을 통해 들어왔다. 7시간 만이다.
그러나 펨바도르지를 비롯한 셀파들은 무거운 짐 탓에 조금 늦게 도착한다는 소식을 홍재기 등반대장이 전해주었다. 셀파 사다인 펨바도르지는 에베레스트 무산소 최단시간(8시간 10분) 기록보유자이고 아마다블람을 4번이나 등반한 경험을 가진 자타가 공인하는 스트롱 셀파였기에 특별히 걱정하지는 않았다.
히말라야를 찾을 때마다 나는 현지 셀파를 가족처럼 생각하며 모든 일을 상의해서 등반을 진행해 나갔다. 문화의 차이 때문인지 마음 한구석엔 편치 않은 면도 있지만 그들의 순박한 인간성 하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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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1을 구축하고 돌아온 대원들을 격려해주며 항상 정성을 다하라고 당부했다. 대원들은 하나같이 캠프1 가는 길이 지루하다고 푸념을 했다. 캠프1 가는 길은 등반에 어려움은 없지만 갑자기 고도를 많이 올리게 되고 장시간 걸어야 하는 등반로로, 마지막 너들지대의 바위길에서는 체력소모가 많다.
이번 원정에서 돋보이는 여성 산악인들이 3명 있었는데 지리산 훈련 때 날다람쥐라는 별칭도 얻을 정도로 열정을 보여주며 아주 적극적이었다. 그들은 남자대원들과 똑같이 행동했다. 이들이 성공하면 우리 지역에서 나름대로 대표성을 갖는 여성 히말리스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아마다블람 베이스캠프가 있는 밍보에는 동계 등반기간이라 원정팀이 우리밖에 없다. 사방이 만년설로 뒤덮힌 베이스캠프 생활이 적적하기도 하지만 대원들이 많은 편이어서 견딜 만 했다.
1차공격조가 베이스에서 쉬는 동안 2차공격조인 나와 7명의 대원들은 12월 12일 아침 8시 30분경 라마제단을 돌면서 무탈을 기원한 뒤 캠프1 등반에 나섰다. 히말라야 상공에는 바람에 실려 구름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잠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고소에 적응하면서 5시간 40분 동안 걸음을 옮긴 끝에 캠프1에 다다랐다. 베이스캠프와는 1천미터의 고도 차이가 나다보니 대원들 대부분 크고작은 고소증세를 느끼고 있었다. 오히려 곽정혜와 또다른 여성대원들의 씩씩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피곤한 몸에는 잠이 최고다. 고소텐트 4동을 설치해 모두들 그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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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다본 아마다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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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자 비빔밥으로 요기를 한 뒤 캠프2를 향해 등반에 나섰다. 불안정한 릿지를 구성하고 있는 캠프2 구간은 차라리 동계등반이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눈이 없기 때문에 가을 시즌보다는 수월하다고 느껴졌다.
돌길을 오르고 내리기를 2시간 30분, 눈 앞에 벽이 나타났다. 옐로우 타워다. 대원이 많기 때문에 우린 11m/m 등반자를 하나 더 설치했다.
그리고 벽을 넘어서니 독수리 요새 같은 곳이 나타났는데 다름아닌 캠프2였다. 캠프2에 이중화와 피켈을 데포시켜 놓고 베이스캠프로 귀환했다. 왜냐하면 눈이 거의 오지 않아서 베이스에서 캠프2까지는 이중화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이스캠프에 내려와 기상을 점검하니 앞으로 4~5일 후면 기상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일정을 하루 앞당기기로 했다. 12월 14일 홍재기 등반대장을 중심으로 한 1차공격조가 정상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베이스캠프의 통신방비 앞에서 떠날 줄 모르고 기다리던 우리에게 캠프1 무사도착의 통신이 접수된 것은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였다. 시작이 좋았다. 이틀 뒤에는 정상등정소식을 접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나는 쿡인 파상한테 라마제단에 계속 불을 붙여서 연기를 피우라고 지시했다. 성공을 비는 의식이었다.
다음날 아침 하늘은 너무나 화창했다. 히말라야 여신이 우리를 받아들인다는 것일까. 어쨌든 이곳에서 날씨는 무엇보다 중요한 조건이다. 옐로우타워를 올라서서 캠프2를 거쳐 1차공격조의 등반은 계속되고 같은 시각에 나를 포함한 2차공격조는 캠프1로 올라가고 있었다.
캠프1에 도착한 저녁 7시가 넘어서야 1차공격조가 캠프3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정상에 도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날 밤 캠프3으로부터 강풍이 몰아치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불안했지만 긍정적인 생각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대원들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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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을 향한 출정에 앞서 라마제단에 예를 올려 무사귀환을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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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주사위는 던져졌다. 드디어 1차공격조가 정상에 도전하는 날이다. 이른 아침 정상을 향한 등반대는 캠프3를 출발했고, 그들이 등반 모습은 고화질 카메라에 포착됐다.
하지만 갑자기 기상이 악화돼 도중에 멈춰서게 됐다. 칼날이 스치는 듯한 바람으로 스노샤워가 일어 눈앞이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 렌즈에도 대원들 모습이 잡히지 않았다. 어렵사리 교신이 되자 나는 하산 지시를 내렸다. 어쩔 수 없는 신속한 결정이었다.
낙심하여 내려오는 1차공격조와 대기하고 있던 2차공격조가 캠프1에 함께 머물기 위해서는 고소텐트가 더 필요했다. 셀파에게 베이스캠프에서 예비고소텐트를 가져오도록 지시한 후 하산하는 대원들을 기다렸다. 정오가 지나자 초췌한 모습의 1차공격조 대원들이 하나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악천후 속의 사투에서 돌아온 그들은 육체적으로도 상당히 지쳐보였지만 고지를 눈앞에 두고 돌아선 상실감 때문에 더욱 지쳐보였다. 홍재기 대장은 잠시 쉬면서 라면을 끓여먹고 난 뒤 베이스캠프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1차공격조의 실패였다. 아쉬웠지만 승낙했다.
정상 재도전, 그리고 성공
2조는 일단 캠프1에서 하루를 더 머문 뒤 일기를 보고 등반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나는 혹시나 여자대원들의 마음이 약해질까봐 스스로 마인트컨트롤 할 수 있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캠프1에서의 이틀째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텐트를 열었더니 바람은 잠들고, 새벽의 여명 속에 아마다블람이 고요히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일단 출발 결정을 하고 대원들을 집합시켰다. 돌무더기들이 이어지는 릿지를 탈 때는 곡예사처럼 고정로프를 이용했다.
캠프2에 도착해 간식으로 허기를 해결하고 바로 캠프3로 향했다. 가파른 설사면이 계속되는 동안 대원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강한 인내심이 필요한 구간이다. 오로지 정상을 향한 도전의지가 충만해야 이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
대원들은 서로 의지가 되어 격려하고 우정을 돈독히 함으로써 지친 몸을 이겨냈다. 설산의 건조하고 찬 공기를 들이키면서 힘겹게 진행하는 대원들 앞에 아름다운 아마다블람의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오후 3시가 가까운 때였다.
에베레스트와 로체가 병풍처럼 뒤를 장식하고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보석같은 위용을 뽐내는 아마다블람의 정상에 서는 순간 무한한 희열과 함께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온몸을 엄습해왔다.
대원들은 모두 말을 잃고 얼싸안기만 했다. 그래 우리가 해냈다. 곽정혜와 채은미 두 여성대원들이 너무나 대견해 보였다. 그들의 성취감도 대단한 듯 했다. 내려오는 길은 상행등반보다 위험하다지만 정상 정북의 쾌감으로 인해 오히려 걸음걸이가 사뿐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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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배 양산대학교 생활체육과 졸업 히말라야 에베레스트(8천848m), 초오유(8천201m), 가셔브롬2봉(8천35m), 로체(8천516m) 등정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천895m), 북미 맥킨리(6천194m), 남미 아콩카구아(6천959m), 유럽 엘부르즈(5천643m) 등 5개 대륙 최고봉 등정 (사)대한산악연맹 경남연맹 부회장 체육훈장 기린장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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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어두워서야 도착한 베이스캠프는 평화로운 보금자리였다. 라마제단 앞에서 무사등정과 귀환을 도와준 여신에게 감사의 예를 올린 뒤 식당텐트로 들어섰다.
그동안 베이스에 남아서 우리들의 등반을 지켜보고 있던 대원들이 큰 환호로 반겨 주었다. 축하파티가 끝난 뒤 1차 등정에 실패해 의기소침한 대원들을 불러 위로했다. 이번 원정에서 옴비가찬 등정이 남아있으니 실망하지 말고 준비하라고 말해 주었다.
텐트에 들어가 몸을 뉘이니 만 가지 상념이 머리에 떠오른다. 항상 새로운 도전을 추구해 왔던 나로서는 이번 원정도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의사는 히포크라테스선서를 하고 산악인은 100자 선서를 한다.
의사는 환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하고 산악인은 강한 의욕과 열정으로 산을 올라야 한다. 인간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곳을 가는 것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도전정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