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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교단일기]죄송합니다, 고3 담임입니다..
오피니언

[교단일기]죄송합니다, 고3 담임입니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2/09/11 10:23 수정 2012.09.13 03:22





 
↑↑ 안순영
웅상고 교사
 
토요일 밤이다. “교단일기 원고 내일까지는 꼭 보내주세요”라는 문자에 정신이 번쩍 든다.
 
“죄송합니다”라는 답을 꾹꾹 누르는데 뭔가 울컥 한다.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고 다니는 날들. 수위 아저씨의 호각 소리가 들린다. 밤 10시, 학교에서 나가야 할 시각, 1층에서 상담하시던 다른 선생님께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나도 곧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짐을 챙겨야 한다. 일어나는데 머리가 핑그르르 돈다.

지금으로부터 5분 전, 나는 다른 반 학생의 자기소개서를 검토한다. 1시간 전, 아드님이 동아대에 가기 힘들다고 말한다. 2시간 전, 성균관대 추천서는 계속된 아이들의 질문에 다섯 문장을 넘기지 못한다. 3시간 전, 이제는 밥 좀 먹어야겠다고 학생을 보낸다.
 
4시간 전, 포기하려는 학생에게 자기 추천 전형을 권한다. 5시간 전, “내년에 꼭 대학로에서 차 한 잔 하자. 난 널 믿는다”라고 말한다. 6시간 전, “수시 원서철 교실 붕괴가 이런 거다. 샘을 많이 도와도”라고 애원한다. 7시간 전, 뫼비우스의 띠처럼 같은 이야기를 학생에게, 어머님께, 아버님께 반복하며 무척 괴롭다.

8시간 전, “선생님, 죽도록 열심히 공부할 자신은 없어요”라는 고백에 커피맛이 쓰다. 9시간 전, 쉴 시간은 지금밖에 없어 점심밥을 포기하고 여교사 휴게실에서 죽음 같은 잠을 잔다. 10시간 전, 간호학과에 갈 학생과 농어촌 전형이 유리할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11시간 전, 화장실에 들렀다가 복도에서 다른 반 학생의 자소서를 읽는데, “선생님, 우리 왜 여기서 쪼그려 앉아서 해요?” “우리 반 애가 기다리고 있는데 니랑 교무실에 가기 눈치 보인다”라는 대화를 나눈다. 12시간 전, 산업 디자인을 하는 학생과 함께 모자란 실기 실력에 한숨을 쉰다.

13시간 전, 지각생을 야단친다. 14시간 전, 토요일이라 두 시간 더 잤는데도 온몸의 뼈가 바스라질 것 같다. 18시간 전, 서류더미에 코를 파묻고 엎드려서 잠든다.

이런 날들이 8월 초부터 계속이건만, 죄송하다는 말을 자꾸 해야한다. 죄송합니다, 다시 제출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나중에 전화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일요일에 학교 문 열어달라고 귀찮게 해서. 그러면서 혹사당하는 내 몸에겐 미안하다는 말도 못한다.

고3 담임이 아니라면 이 사정을 어이 알랴! 입학 사정관제의 바다에서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어 자기소개서를 봐달라는 아이들을, 우리 반이 아니라고 매정하게 내칠 수 없는 국어교사의 천형을 어이 알랴! 

그 와중에 국어과가 아닌 담임의 자존심을 건드릴까봐 일은 일대로 하고 눈치는 눈치대로 봐야 하는 사정! 쓰러질 것 같지만, “파워에이드 드시고 파워에이드 하십쇼. 힘내시란 말입니다. 파이팅~ 3학년 5반 일동”, “선생님, 입술이 보라색이에요. 이런 거 안 드시는 거 알지만 뭐라도 드리고 싶었어요. 이래뵈도 프리미엄 커피에요”, “진짜 고생하시는데 좀만 더 힘내세요. 언제나 사랑해요♥”, “쌤도 힘들고 저도 그렇고 동병상련이네요. 이 시간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학생들의 응원으로 오늘도 버틴다.

양산시의 고3 학생, 고3 담임 선생님, 고3 학부모님! 우리 조금만 더 힘냅시다. 으랏차차차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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