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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언 양산대학교 로봇기계과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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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학교 진학을 위해 학과성적 올리기에 급급하고, 남을 이기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살벌한 경쟁심만 부추기는 가정과 학교 분위기 속에서 자기중심적 성격이 강해진 것이다.
초ㆍ중ㆍ고교에 윤리와 도덕 과정이나 과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외워서 답안지 메우는 것에 그치고,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각자 자기의 이기심으로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기중심주의와 이기주의는 흔히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 두 가지 모두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 볼 때, 두 가지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우선 자기중심주의에 대해 살펴보자. 스위스의 심리학자인 삐아제의 인지발달이론에 따르면 어린아이들은 ‘자기중심성(egocentrism)’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시기의 아이들은 인지발달의 미성숙으로 인해 타인에 대한 고려를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타인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타인은 이런 생각과 느낌을 갖게 될 것이라는 사실 등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의 자기중심성은 순전히 지적능력 부족 때문에 비롯된 것이기에 도덕적인 문제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아이들이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고 떼를 써도 ‘애들이 뭘 알겠어’, ‘아직 어리니까. 철이 들어야지’라고 말하며 너그럽게 봐주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삐아제가 말한 고전적인 의미의 자기중심주의는 인지적 발달이 진행됨에 따라 사라진다. 아이들도 타인의 존재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어른이 ‘자기중심적’이라는 비난을 듣게 된다면 그것은 매우 치욕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비난 속에는 ‘너는 아직 지적 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어’라든가 ‘너는 지적인 장애를 가진 인간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만일 자기중심주의가 인지발달의 미성숙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라면 어른에게 있어서는 자기중심성이 나타나지 않아야 할 텐데, 분명히 우리 주변에는 자기중심적인 어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위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리고 앉아 있음에도 혼자 신이 나서 마구 자기 말만 늘어놓는 사람, 술안주를 시킬 때 박박 우겨서 자기가 좋아하는 골뱅이만 시켜먹는 사람, TV 리모콘을 틀어쥐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간, 분위기를 흐리면서까지 앞에 나서고 튀는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 등등.
이런 어른들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인지능력에 하자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어른이 어린 시절의 인지발달 단계를 정상적으로 통과하지 못했다고 가정하기는 힘들다. 물론 그 발달수준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따라서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어른들에게는 ‘지적인 문제’보다는 ‘정서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예를 들면 애정결핍이 심한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기에도 바쁘기 때문에 타인을 배려할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가 없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술안주만 시키고, 자기 입장만 내세워 기어이 그것을 관철시키고 타인의 양보를 유도하는데, 이것은 어린 시절 떼를 써서 부모를 꺾은 경험을 반복하거나 아이다운 어리광을 부려보지 못한 결핍을 어른이 되어 타인으로부터 보상받으려는 데서 비롯된다.
어쨌든 이런 행동은 부모로부터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서 확인받으려는 몸부림인 셈이다. 따라서 자기중심성은 결핍에 시달리는 자기를 보살피는 위로이며, 사람들한테 사랑받고 대접받고 있다는 거짓만족을 제공하는 대체물인 것이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에게는 ‘네가 그렇게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하면 사람들이 싫어한단다’라는 식의 친절한 충고는 별다른 효과가 없다. 그걸 몰라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니니까. 사랑을 받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구는 지적 판단을 압도하는 법이다.
사실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반복하게 되면 사람들의 눈총을 받게 마련이어서, 어지간히 무딘 인간이 아니고서는 자기의 문제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강력한 무의식적 욕구 때문에 자기중심성을 버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런 사람들은 그야말로 ‘누가 나 좀 말려줘’라고 외치고 싶을 것이다. 이렇게 해결되지 못한 욕구나 결핍은 제어하기 힘든 충동을 유발해 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 충동을 억지로 억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억압된 충동은 신경증을 유발하는 원인이므로 결국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고치려면 자신의 심리적 문제점을 직면하고 그것에 대한 근원적인 심리분석을 진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