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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성(山東省) 태안시에 자리잡고 있는 태산은 주봉의 높이가 1천545미터로 그리 높진 않지만 산세가 웅장하여 중국인들 사이에서 ‘천하 제일 명산’ 또는 ‘오악의 으뜸’으로 불리고 있다. 중국인 중 90%가 오르고 싶어하는 영산(靈山)이다. 그들은 태산 등정을 자기 일생의 큰 영광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태산은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양사언의 시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봉래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은 조선조 중기에 한석봉과 함께 같은 시기를 살다 간 명필가이자 선정을 베풀면서 여덟 고을을 다스린 선비이다.
또한 단 한 수의 시조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는 인간의 부단한 노력을 요구하면서도, 읽거나 외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부감을 느끼게 하지 않고, 용기를 북돋는 내용으로서 만인에게 회자되는 글이다.
7천4백개의 계단을 오르다
우리는 태산을 매우 높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태산은 지리산이나 백두산보다 낮고 오르기도 어렵지 않다.
MBC아줌마원정대는 청도에서 노산북구수를 둘러보고, 태산에 오르기 위해 산동성의 타이안(泰安)으로 이동했다 청도에서 자동차로 5시간 정도 걸린다. 태산 주변 풍경은 한국의 북한산이나 도봉산과 비슷하다.
태산을 오르는 것은 일천문(一天門)에서부터 정상까지 난 7천412개의 계단을 부지런히 오르면 된다.
단조로운 이 길을 흥미롭게 해주는 것은 도교의 유적과 중국 역사의 발자취다. 도교 사원인 두모궁(斗母宮), 서왕모(西王母)를 모시는 만선루(萬仙樓) 등이 있다.
주나라 목왕이 천산산맥에 있는 천지(天池)에서 보았다는 전설이 서린 서왕모는 처음에는 죽음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반인반수의 흉칙한 모습이었으나 후일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고, 불사의 약을 지닌 선녀가 되었다고 전한다.
계속 한두 시간을 걸어 올라가면 태산 중턱의 중천문(中天門)이 나오는데 여기서 정상의 남천문(南天門)까지는 케이블카가 있다. 길 옆에 매점들과 사진 찍어 주는 사람들을 지나치다 보면 오대부송(五大夫松)이 나온다.
진시황이 태산에 오르다 비를 피했다 하여 오대부란 관직을 부여받은 소나무이며, 이곳을 지나면서부터 가파른 계단이 시작된다. 숨이 차지만, 중간에 18개의 널찍한 판이 있어 잠시 쉴 수 있다. 여름 성수기 때는 가마꾼들이 돈을 받고 사람을 실어나르기도 한다고 하는데 이번 트레킹에서는 볼 수가 없고 간혹 무거운 짐을 나르는 짐꾼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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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계단의 끝에 남천문이 있다. 하늘에 거의 다다른 듯한 분위기에서 주변을 돌아보면 동남쪽 절벽 끝에 첨노대(瞻魯臺)가 보인다. 멀리 노(魯)나라를 바라볼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불치의 병에 걸린 부모님의 치유를 기원하며 몸을 던지는 이가 있어 명나라 때 울타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여길 지나면 ‘하늘의 거리’인 천가(天街)가 시작된다.
현재 하늘의 거리에는 숙소와 기념품 판매소,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천가에서부터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넓은 들판과도 같다. 종종 구름이 끼면 마치 하늘의 세계를 거니는 것만 같다.
정상 부근에는 태산의 주신을 받드는 도교 사원인 벽하사(碧霞祠)와 거대한 돌에 글씨를 새겨 놓은 대관봉(大觀峰)이 있으며, 정상인 천주봉(天柱峰)에는 옥황정(玉皇頂)이 보인다.
그 부근의 무자비(無字碑)란 비석은 원래 글자가 없는 비석으로, 한 무제가 2100년 전에 세웠다. 태산의 위대한 풍광에 겸손한 마음으로 아무 것도 적지 못했다는 얘기도 있고, 후세 사람들이 평가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자를 새기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무자비를 지나면 바로 옥황상제를 모셨다는 옥황정인데, 여기서 역대 황제들이 봉선의식을 거행했다. 멋진 자연과 함께 이처럼 수많은 신화와 전설, 그리고 역사가 깃든 문화 유적지에서도 태산의 매력을 찾을 수 있다.
태산은 중국 5대 명산인 오악 중에서 동쪽에 있다하여 동악(東岳)이라고도 불리며, 그 중에서도 으뜸이라 하여 오악독존(五岳獨尊)이라 일컬어졌다. 동쪽은 모든 만물이 생성되는 방향이기에 태산은 가장 신성한 산으로 여겨져 왔다.
공묘, 공부, 공림의 역사체험
태산 등정을 마치고 1시간 반을 이동해 공자의 고향인 곡부(曲阜)시에 도착했다. 곡부는 춘추전국시대에 노(魯)나라의 도성이었다. 곡부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공묘(孔廟)다.
공묘는 공자가 살던 집을 개축해 만들었으나 이후 공자의 사상을 숭상하던 역대황제들의 끝없는 존경심에 지금과 같이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전한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 9월 28일 이곳 곡부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 창평향(昌平鄕) 추읍에서 부친인 숙량흘(叔梁紇)과 모친인 안징재(顔徵在) 사이에서 태어났다.
공자의 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현지 가이드로부터 듣고 나니 논어를 몇 번 읽어본 기분이 들었고 불행한 삶에서 피어난 위대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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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뜨거운 가슴을 지닌 사람이었으며, 아주 평범한 일상 생활 속에서 진리를 찾았던 사람이였다. 알고 보면 매우 친근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였다.
공자는 2500여년에 걸쳐 인류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중심 문화였던 유가 사상의 대표자이다. 공자는 중국 문화의 출발점이었고, 주류였다. 한때는 한나라에서 신격화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뒤 사마천이 <사기>에 공자의 생애를 기록하면서 다시 인간으로 끌어내렸다. 공자의 위대성은 그가 성인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었다는 데에 있으며, 공자의 생각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인간 관계에서 지배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숙소인 곡부호텔로 돌아와 여장을 풀고 곡부시 여유국장님의 만찬으로 후한 대접을 받았다. 다음날 공자의 가족들이 살았다는 공부도 둘러보고 공자의 무덤 공림을 찾아가 보았다.
공림을 들어서니 오른쪽엔 73그루의 나무가, 왼쪽은 72그루가 버티고 있다. 73은 공자가 세상을 떠난 나이이고 72는 공자의 제자 수다. 다리를 건너면 제일 먼저 공자의 손자인 공급의 무덤을 만나고 다음은 공자의 아들 공리의 묘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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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배 양산대학교 생활체육과 졸업 히말라야 에베레스트(8천848m), 초오유(8천201m), 가셔브롬2봉(8천35m), 로체(8천516m) 등정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천895m), 북미 맥킨리(6천194m), 남미 아콩카구아(6천959m), 유럽 엘부르즈(5천643m) 등 5개 대륙 최고봉 등정 (사)대한산악연맹 경남연맹 부회장 체육훈장 기린장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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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산동성의 청도까지 에어부산 직항편이 있다. 청도에서 타이안까지는 버스로 5시간 30분. 태산을 일천문에서 걸어 올라가면 4〜6시간 소요된다. 빠르게 오르려면 천외촌(天外村) 종점에서 태산의 중턱인 중천문까지 버스로 약 30분 올라가 중천문에서 남천문까지 가는 케이블카를 탄다. 30분 정도 걸린다.
정상을 돌아보는 데는 약 2시간 정도 소요되고, 중천문으로 내려오는 케이블카는 오후 5시까지 운행한다. 중천문에서 천외촌까지 내려오는 버스는 오후 6시가 막차다. 타이안 시내에는 역대 황제들이 태산에 오르기 전에 제를 올렸던 대묘(垈廟)와 한국인 만공(滿空) 스님이 세운 보조사(普照寺)라는 절도 있다.